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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8 13:44 수정 : 2019.06.30 20:33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BTS·비티에스)의 팬을 아미라고 부르듯, 비틀스의 팬들 중에 열성적인 팬을 비틀마니아라고 부른다. 이미 비틀스는 해체되었고 세상을 떠난 멤버들도 있기에 재결성은 불가능함으로 비틀마니아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영광을 주워 담는 것으로 경배를 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번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지독한 비틀마니아였다. 나 역시 비틀스 해체 뒤에 태어난 세대였기에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은 지켜보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 정규·비정규 음반을 모조리 모으고 온갖 기록을 섭렵하고 그리 많지 않은 영상을 다 찾아보았다. 10대 후반부터 레드제플린과 에이시디시(AC/DC)에 차례로 빠진 뒤, 20대 중반쯤의 일이었다.

음악이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다. 어떤 아티스트가 얼마나 위대한지 아티스트들 간에 비교를 하는 일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부분은 기록뿐. 판매량이나 빌보드 차트, 공연장의 관객 수 등은 숫자로 비교가 가능하다. 세월에 따른 물가상승률이나 매체의 다변화 등을 고려해 보정을 하면 팝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룹은 비틀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솔로 가수로는 마이클 잭슨 혹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꼽을 수 있겠다. 단순히 상업적인 수치만 최고가 아니라 비틀스는 시대정신과 철학을 음악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브릿팝의 끝판왕 오아시스 정도를 제외하면 제2의 비틀스라는 칭호는 감히 아무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앞에 ‘제2의 비틀스’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화자찬이 아니라 영미권의 권위 있는 매체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기성세대 중 많은 이들은 코웃음을 친다. 과장된 표현이다, 감히 어디다 대고 비틀스라니, 웃고 만다. 이런 반응들이 많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의 잣대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 차트의 기록만 놓고 보면 민망해진다. 비틀스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1위곡을 보유하고 있다. 무려 21곡. 아직 1위곡이 하나도 없는 방탄소년단으로서는 감히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음반 차트에서는 방탄소년단도 1위를 세 번 차지했지만 비틀스는 무려 19번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지상파 티브이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미디어 시장을 내준 것처럼 빌보드 차트 역시 마찬가지. 방탄소년단은 전통적인 차트인 싱글과 음반 차트에서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스트리밍 등의 영역에서 주요 지표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게다가 비틀스를 비롯해 퀸이나 롤링스톤스 등등 록그룹은 팬층이 백인에 편중되어 있었는 데 비해 방탄소년단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남미와 유럽, 동남아에서도 상상 초월의 인기를 누린다. 그들의 공연장 혹은 채팅창은 온갖 인종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다. 놀랍게도 세계 각국의 아미는 오직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 서로 다른 문화를 교류하고 끈끈하게 연대한다. 누구 못지않게 팝음악에 심취했고 직업상 수많은 가수의 팬덤을 경험한 나조차도 이런 종류의 팬덤은 정말 처음이다. 비슷한 현상도 없었다. 이건 비틀스가 그토록 갈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던, 이상적인 형태의 평화와 사랑이다. 존 레넌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래서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모습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내가 ‘이매진’(Imagine)에서 노래했던 꿈을 너희들이 현실로 만들어줬구나. 고마워.”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비틀스는 전 곡을 다 직접 작사 작곡했고 직접 연주까지 했다고. 물론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작사 작곡을 하고 악기 연주도 하지만, 이건 장르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비틀스는 기본적으로 록밴드 편성이었고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좀 더 넓게 잡으면 힙합을 일부 차용한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음악을 한다. 작사 작곡이나 연주 능력보다 랩과 안무가 더 중요하다. 장담하건데 팝 역사상 방탄소년단만큼 멋진 안무를 구사하는 그룹은 없었다. 솔로로 치자면 마이클 잭슨이라는 신이 있지만 그룹으로선 정말 그렇다. 래퍼로서 슈가와 아르엠(RM), 제이홉의 능력치 역시 더 이상 검증할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진짜 힙합 운운하면서 방탄소년단을 씹고 싶다면, 나의 최애 슈가가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믹스테이프를 권해보고 싶다. 그 옛날 투팍부터 켄드릭 라마까지 들어온 필자가 인정한다.

방탄소년단을 감히 비틀스에 비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대정신에 있다. 비틀스가 반전과 평화를 노래한 것처럼 방탄소년단도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왔다. 빈부격차가 공고하고, 남과 비교당하기 쉽고, 그래서 그 어느 시대보다 개개인이 초라해지기 쉬운 지금 가장 필요한 메시지다. 무려 유엔이라는 무대에서 ‘너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너의 이야기를 하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아르엠의 연설을 보며 (필자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가 눈물지은 이유도 그래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던 위로를 방탄소년단이 건네준 것이다.

나는 이제 방탄소년단의 위치가 종교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별건가? 신이 따로 있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신이다. 아무리 그래도 신은 너무했다고? 근엄한 척 뒤로는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정치인 행세를 하는가 하면 신도들에게 돈 뜯어낼 생각에 골몰하는 일부 혹은 다수 종교인들보다 방탄소년단에 빠지는 편이 몇배는 더 도움 된다. 나 역시 자기혐오와 막연한 공포에 질려 있던 최악의 시기에 방탄소년단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간증한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여기서 멈출 순 없지. 다음 화에 계속. 덩기덕 쿵 더러러러.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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