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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3 19:28 수정 : 2016.11.16 09:39

정인경의 과학 읽기

배고픔에 관하여
샤먼 앱트 러셀 지음, 곽명단 옮김, 손수미 감수/돌베개(2016)

우리가 사는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10억명, 7명 중에 1명은 굶주리고 있다. 이 “가슴이 미어지는” 현실을 <배고픔에 관하여>가 과학적으로 ‘사유’했다. 이 책의 저자 샤먼 앱트 러셀은 최근작 <시민 과학자의 일기>로 2016년 존 버로스 메달을 받은 과학저술가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받은 그 상이다. 우리에게 배고픔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데 과연 배고픔이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인지 의문이 든다. 흔히 배고픔을 겪다, 느낀다고 하지, 배고픔을 생각하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분석하지는 않는다. 배고픔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 수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배고픔을 과학적으로 사유했다는 것만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러셀은 이 책에서 과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이야기한다. 배고픔은 외면할 수 없는, 꼭 해결해야 할 세계의 문제이기에 과학이라는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고. 예컨대 “배가 고플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목마를 때, 고통스러울 때, 산소를 들어 마시려고 기를 쓸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같다고 한다.” 이렇게 배고픔의 고통이 어린 아이들의 인지능력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성이라고 불리는 행동규범까지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파헤쳐본다. 비통한 마음에 잠 못 이루며 한 장, 한 장 채워진 탐구서는 우리에게 “굶주림 없는 세상을 향하여” 함께 가자고, 작은 노력이라도 멈추지 말자고 설득한다.

<배고픔에 관하여>는 기아에 관련된 많은 자료와 연구 결과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의사들이 작성한 ‘굶주림 질병 연구’는 맨 정신으로 읽기 힘들 정도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지역에는 굶주리고 있는 환자와 굶주려 죽은 시신이 넘쳐났다.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은 유대인 의사 200여명은 굶주림을 연구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연구프로젝트는 수년간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최종 원고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동료 의사들 중에도 굶주린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연구를 중단하는 사람은 없었고, 어떤 홍보도 하지 못하는 그 연구를 묵묵히, 겸허하게 수행했다.”

이들 의사, 간호사, 의학도들의 헌신으로 연구보고서는 전쟁이 끝난 후 무사히 출간되었다. 그 보고서 덕분에 굶주림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환자들의 증상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본분을 잊지 않은 ‘용기 있는 실천’, 그것의 연장선에 <배고픔에 관하여>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태를 겪으며 “이제는 정말 둘러댈 핑계가 없다”는 러셀의 말이 더 아프게 들린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에 이어 ‘정인경의 과학 읽기’를 새로 싣습니다. 과학저술가이면서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정인경씨는 ‘과학은 앎’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펼쳐 보일 것입니다. 정씨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과학의 역사를 재구성한 <뉴턴의 무정한 세계>와 <보스포루스 과학사>를 썼고, 얼마 전엔 독자들과 과학을 아는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과학을 읽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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