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경의 과학 읽기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강명관 지음/천년의 상상(2014) 책은 인간의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의식과 감정, 기억, 생각이 글쓰기를 통해 기록되는 순간, 마법이 일어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른 이들의 뇌에 접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5세기 유럽, 인쇄술의 발명을 혁명이라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은 인간의 사고, 지식, 신념, 정보를 빠르고 쉽게 복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이다. 책 끝부분에는 “1377년 청주 교외의 흥덕사에서 인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구텐베르크의 인쇄보다 70여년이나 앞선, 지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 과학기술사에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금속활자는 딱 여기까지 알려져 있다. 왜 고려시대에 금속활자가 만들어졌을까? 그것도 중앙 관서가 아닌 지방의 흥덕사라는 절에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은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의 의미를 묻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도대체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서 무얼 하려고 했던 것일까? ‘금속활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활자로 인쇄된 책’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강명관이 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인쇄술의 발명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조선 인쇄술의 차이를 궁금해 한다. 조선의 인쇄술은 왜 유럽과 같은 인쇄혁명을 일으키지 못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명관은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다. 알파벳은 26자의 표음문자이고, 한자는 5만자가 넘는 표의문자라는 것. 글자 하나의 크기가 크고 글자 수가 많았던 조선의 금속활자는 기계화나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또한 제작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국가가 금속활자를 소유하고, 지배에 필요한 소량의 책을 발간하는 데 이용했을 뿐이다. “금속활자를 국가가 소유했다는 것은 바로 국가가 지식의 공급처이고 지식의 유통주체라는 의미였다. 금속활자로 어떤 책을 찍을 것인가는 오로지 왕과 관료들이 결정했다. 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한 책만 찍어냈다. 국가가 독점한 금속활자와 인쇄술은 오로지 극소수 지배자―양반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유럽과 조선의 인쇄술은 금속활자라는 것만 같을 뿐, 사회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유럽의 인쇄술이 민중에게 새로운 지식을 보급했다면, 조선의 인쇄술은 민중의 의식을 통제하고 지배 질서를 고착화했다. 인간의 사상과 지식을 전파할 것인가? 아니면 통제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인쇄와 책의 가치가 있다. 책은 다양한 생각들이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고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강명관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서 책의 존재보다 책의 유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읽히지 않는 책은 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책을 만드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출판사, 인쇄소, 책 도매상, 서점, 도서관에서 보이지 않게 책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의 존재 가치를 불어넣는 사람은 독자들이다. 지식이란 책으로 유통되어 독자의 마음에 닿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에 처하기에.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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