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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30 19:20 수정 : 2017.03.30 20:47

정인경의 과학 읽기

핵을 넘다
이케우치 사토루 지음, 홍상현 옮김/나름북스(2017)

핵에너지와 관련된 과학기술은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일본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이케우치 사토루는 원자력 발전을 반윤리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핵을 넘다>에서 일본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며 과학자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지진과 지진해일이 빈번한 일본은 원전입지에 최악의 환경인데도 왜 원전 의존이 국책으로 추진됐는지 과학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본다. 이는 자본주의의 주구가 돼버린 과학자의 존재와 뗄 수 없는 문제이자 앞으로 과학이 지향할 모습과도 깊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핵의 재앙을 직접 겪은 나라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핵무기의 파괴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1954년에는 미국이 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시행했고, 메가톤급 위력의 수소폭탄은 일본 어선 1000여척과 2만여명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일본은 ‘최초의 원폭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수폭 세례’까지 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진과 쓰나미가 덮쳐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자로의 노심을 녹여, 주변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된 폐허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오욕의 역사가 있는데도 일본은 탈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이케우치 사토루는 ‘핵을 넘어서’ 가겠다는 의지가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는 다시금 원전의 반윤리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돈과 이권을 미끼로 소외된 지역 사람들에게 위험천만한 원전을 떠넘기고 있는 것. 둘째, 우라늄 광석 채굴부터 정련, 점검 수리, 처리, 폐기, 폐로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방사선 피폭을 떠넘기고 있으며, 셋째는 현세대가 10만년이나 가는 방사능 폐기물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지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원자력발전소는 인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 위에 건설된, 명백히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을 넘어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탈핵운동은 단지 에너지원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에너지 정책은 우리 삶의 문제다.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정책을 세우는 것은 원전이 지닌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만약 원전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거대 자본과 권력이 나타나 에너지를 독점한다면, 사회적 약자와 미래 세대의 삶은 여전히 피폐할 것이다. 에너지 권력의 지역적 분산, 민주주의와 사회적 비판의식의 활성화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앞으로 핵을 넘어서려는, 탈핵운동은 인류에게 도덕성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파멸할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가 명백히 반윤리적인 핵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과 같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찾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탈핵은 인간의 의지로 과학기술을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보루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우는 <핵을 넘다>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과학기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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