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경의 과학 읽기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반니(2017)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기원이 있다. 창조와 탄생의 순간이 있었던 것들은 기원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주의 기원, 시간의 기원, 공간의 기원, 물질의 기원, 종의 기원, 인간의 기원 등등. 우주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기원의 탐구는 꾸준히 이어져왔고, 17세기 근대과학의 등장은 기원을 설명하는 데 새로운 언어를 제공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법칙들이다. 21세기 현대 과학은 이러한 법칙들을 기반으로 우주, 생명, 인간, 의식을 하나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짐 배것의 <기원의 탐구>는 최근 과학 이론을 소개하는 훌륭한 안내서다. 세상 만물의 기원을 주제로 인간이 궁금한 모든 질문을 과학적으로 답하고 있다.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 우주, 별, 행성, 지구, 에너지, 생명, 인간, 의식은 어떻게 탄생하고 생성된 것인가? 짐 배것은 우주의 역사에서 물질과 비물질, 무생명과 생명의 경계를 허물고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아 그 기원을 탐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물질을 규명하는 물리화학의 법칙을 생명현상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주론과 입자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가지고, 별과 은하의 형성과정에서 유전자의 진화나 다세포생물의 출현, 호모 사피엔스나 인간 의식의 출현까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물질 세계의 특성과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고 우리는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은 우주의 기원을 어디까지 추적하고 접근했을까? <기원의 탐구>는 수많은 과학적 이론을 정설과 가설로 구별하는 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과학의 생명은 엄밀함이다.” 과학은 언제든지 새롭게 관측된 사실로 인해 번복될 수 있고 완전히 다른 답으로 바뀔 수도 있다. 과학은 날마다 새로운 증거와 이론들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지금까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과학은 우주가 진화한 과정의 일부를 밝혀냈지만 우주가 왜 탄생했는가에는 답할 수 없다. 생명의 기원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게 된 동기를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표준이론’은 없다.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생물물리학이나 생화학과 달리, 생명 자체는 범접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인간의 의식도 지금의 지식수준으로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불가사의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주와 인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과학 덕분이다. <기원의 탐구>는 인류의 성취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의 과학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쓰고 있다.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 분자생물학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아가 우주와 생명,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얻고, 지구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한다. 인류의 과학적 성취를 내가 이해한다는 차원은 어떤 것일까? 우주의 기원을 관통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인류의 성취가 내 성취가 되는 것. 그것은 아마 인류에 대한 책임감까지 느끼고 자각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기원의 탐구’는 이렇게 우주에서 미미한 인간에게 존재론적 각성을 안겨주는, 놀랍고도 엄청난 지적 여정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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