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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6 20:25 수정 : 2018.04.26 20:44

[책과 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최인철·김미정·서은국 옮김/김영사(2006)

행복은 배신의 아이콘이다. 늘 뒤통수를 친다. 열심히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느 때는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어”라는 탄식이 나오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잡기도 어렵다. 이럴 때 나오는 말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다. 무엇이 우리를 속이는 것일까? 삶이, 행복이, 나 자신이? 무엇도 탓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인류의 출현과 동시에 행복에 대한 고뇌는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행복은 무엇인가?”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행복의 실체를 경험적, 실증적으로 연구한 책이다.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왜 행복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행복에 대한 인지과학적 해석을 제시한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평생 행복을 좇고 사는데 번번이 행복에 배반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니얼 길버트가 내놓은 답은 명쾌하다. 시인 푸쉬킨의 말대로 우리는 속고 있다. 미래에는 행복할 것처럼 꾀는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의 정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대를 속이는 것은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뇌였다.

결혼하면 행복할까? 우리는 사랑에 성공해서 결혼한 것 같은데 어느덧 남루한 일상만 남는다. 삶은 지리멸렬하고 뒤치다꺼리에 허덕이면서 산다. 행복은 물 건너간 듯하지만 인지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어떤 상황이든 쉽게 적응한다. 달콤한 꿈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습관화’라고 부르고,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 체감’이라고 부르고,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결혼’이라고 부른다.”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미래 예측은 자꾸 빗나간다. 무언가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내 잘못이 아니라 뇌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다.” 미래는 상상을 통해 예측되는데 “시간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므로 상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현재주의’에 갇혀있다. 오늘 좋으면 어제도 좋았고, 내일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현재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뇌의 영역은 현재의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회고와 상상, 지각이 동일한 뇌의 영역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혼동하고 착각한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이러한 인지오류들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우리의 뇌는 현실과 주관적 경험을 혼동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합리화에 능숙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기억, 판단, 예측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헛되이 미래를 예단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불행한 인생이라고 한탄하며 산다.

이 책이 내리는 처방은 두 가지다. 빨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앞서 간 경험자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우리의 실수를 줄이는 순간, 행복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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