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화이트 지음, 이두갑·김주희 옮김/이음(2018) 과거 자연을 숭배했던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려고 들었다. 그런데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지배의 대상도 아니다. 인간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연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리처드 화이트의 <자연 기계>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부제가 ‘인간과 자연,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다. 1995년에 출간된 <자연 기계>는 환경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리처드 화이트는 20세기 후반 미국 역사학계에서 환경사라는 학문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학자다. 이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번역된 것이 반가운 책이다. <자연 기계>는 관점과 해석, 구성, 서술 등 모든 면에서 독창적이다. 화이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환경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 기계>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까지 컬럼비아강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한다. 미국과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북미에서 네 번째로 큰 강, 컬럼비아강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지만 강 주변에 꾸려진 인간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화이트는 이러한 강의 역사를 지리학, 물리학, 생태학, 경제학, 공학, 인류학, 사회학 등을 동원해서 훌륭하게 복원했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나눌 수가 없다. 강은 인간의 힘으로 변화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노동과 일을 투입해서 강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인디언은 연어를 잡았고, 미국인은 댐을 건설하고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를 세웠다. 물리학자는 에너지를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인간과 강은 하나의 에너지 시스템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일과 에너지는 인간과 강을, 인간과 자연을 연결했다. 화이트는 이러한 컬럼비아강을 ‘자연 기계’(organic machine)라고 불렀다. 댐을 건설하듯 인간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강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기계처럼 이용했다. 그런데 강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강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 속에 있었다. “컬럼비아강은 인간의 개입에 의해 변화했지만, 여전히 자연적이고 ‘인간이 창출하지 않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 기계,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하는 곳이다. 이러한 뜻에서 화이트는 ‘자연 기계’라는 용어를 통해 생태학적인 환경사의 관점을 제시한다. 개발인가 보존인가? 시장 중심주의자나 근본주의적 환경론자의 일방적인 주장은 현실적으로 공허할 뿐이다.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강과 자연은 죽어갔다. “한 세기가 지나면서 우리가 부분적으로 창조한 강은 우리 눈앞에서 변화해나갔고, 이 과정에서 소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우리의 가정과 믿음은 조롱받았다. 강은 변화했고, 우리 자신의 과학과 사회, 우리가 지닌 정의와 가치에 대한 관념들이 얼마나 불충분했는지를 명확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4대강 사업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강의 실상을 목도하고 있다. 실패한 강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강을 살려내고 사용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이 문제가 “우리의 삶과 노동의 방식, 정의의 실현, 그리고 후손을 위한 희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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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강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
리처드 화이트 지음, 이두갑·김주희 옮김/이음(2018) 과거 자연을 숭배했던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려고 들었다. 그런데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지배의 대상도 아니다. 인간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연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리처드 화이트의 <자연 기계>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부제가 ‘인간과 자연,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다. 1995년에 출간된 <자연 기계>는 환경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리처드 화이트는 20세기 후반 미국 역사학계에서 환경사라는 학문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대표적인 학자다. 이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번역된 것이 반가운 책이다. <자연 기계>는 관점과 해석, 구성, 서술 등 모든 면에서 독창적이다. 화이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환경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 기계>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까지 컬럼비아강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한다. 미국과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북미에서 네 번째로 큰 강, 컬럼비아강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지만 강 주변에 꾸려진 인간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화이트는 이러한 강의 역사를 지리학, 물리학, 생태학, 경제학, 공학, 인류학, 사회학 등을 동원해서 훌륭하게 복원했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나눌 수가 없다. 강은 인간의 힘으로 변화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노동과 일을 투입해서 강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인디언은 연어를 잡았고, 미국인은 댐을 건설하고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를 세웠다. 물리학자는 에너지를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인간과 강은 하나의 에너지 시스템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일과 에너지는 인간과 강을, 인간과 자연을 연결했다. 화이트는 이러한 컬럼비아강을 ‘자연 기계’(organic machine)라고 불렀다. 댐을 건설하듯 인간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강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기계처럼 이용했다. 그런데 강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강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 속에 있었다. “컬럼비아강은 인간의 개입에 의해 변화했지만, 여전히 자연적이고 ‘인간이 창출하지 않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 기계,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하는 곳이다. 이러한 뜻에서 화이트는 ‘자연 기계’라는 용어를 통해 생태학적인 환경사의 관점을 제시한다. 개발인가 보존인가? 시장 중심주의자나 근본주의적 환경론자의 일방적인 주장은 현실적으로 공허할 뿐이다.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강과 자연은 죽어갔다. “한 세기가 지나면서 우리가 부분적으로 창조한 강은 우리 눈앞에서 변화해나갔고, 이 과정에서 소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우리의 가정과 믿음은 조롱받았다. 강은 변화했고, 우리 자신의 과학과 사회, 우리가 지닌 정의와 가치에 대한 관념들이 얼마나 불충분했는지를 명확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4대강 사업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강의 실상을 목도하고 있다. 실패한 강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강을 살려내고 사용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이 문제가 “우리의 삶과 노동의 방식, 정의의 실현, 그리고 후손을 위한 희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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