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래리 영·브라이언 알렉산더 지음, 권예리 옮김/케미스트리(2017)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도저히 맺어질 수 없는 원수 사이인 두 사람은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현실이여, 잔인한 운명의 굴레여, 황홀한 감정에서 깨어난 그들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예고된 결말이었다. 만약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을 신경과학으로 설명한다면, 사랑의 묘약은 ‘옥시토신’이나 ‘바소프레신’일 것이다. 그들 뇌 속의 몇 가지 화학물질이 뜨거운 감정과 대담한 행동을 이끌었다. 과학적 설명은 단순명료하다. 그들의 애끓는 사랑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일으킨 신경활동이다. 이러한 신경과학적 해석은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죽음도 불사하는 더없이 숭고한 사랑이 순식간에 증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끌림의 과학>을 쓴 래리 영은 사회신경과학자로서 사랑의 근원을 파고들어간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왜 A가 아니라 B가 좋은 것일까? 한 사람을 향한 집착과 욕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사랑에는 특정한 유형과 취향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이성을 사랑할지 동성을 사랑할지는 어떻게 결정될까? 누구는 여자고 누구는 남자라고 말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런 개념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책에서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하지 못한 질문들에 답을 찾고 있다. 사랑은 다양하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인간의 사랑은 신경화학물질이 뇌 속에 설계된 회로에 작용한 결과다. 사랑이 드러나는 양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개인차가 아주 크다. 남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게 나타난다. <끌림의 과학>은 그런 사랑의 오래된 진화적 뿌리를 밝힌다. 바로 7억년 전에 등장한 신경화학물질이다. 거머리에서 도마뱀, 인간에 이르기까지 성을 분화시키고 번식을 주도한 물질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동물 실험은 인간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랑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바탕이 된다.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 같지만 사회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랑이다. 부모 자식 관계의 빗나간 사랑, 데이트 폭력, 동성애 혐오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는 문제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해서 인간 사회의 본질까지 뻗어나간다. 사회신경과학이 알려주는 사랑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지에 적용되는 것이다. <끌림의 과학>은 뇌와 성과학의 연구에 주목한다. 자궁 속 태아는 발달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뇌가 조직된다. 이때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이 결정된다고 ‘조직 가설’은 보고 있다. 네덜란드 신경과학연구소의 다크 스왑은 1989년에 동성애자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성애자라서 뇌가 다른 것이 아니라 뇌가 달라서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동성애는 마음먹고 시작할 수도, 치료한다고 바뀔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랑의 서사를 다시 쓸 때가 되었다. 사랑을 이해하는 자연의 법칙이 바뀌고 있는데, 사랑의 이야기가 여전하다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과학이 우리 사회가 외면한 사랑에 용기를 불어넣기를.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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