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21 06:02 수정 : 2019.06.21 20:03

[책과 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커뮤니케이션즈(2019)

그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도쿄대 전공투 대표였던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당시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다. ‘장래의 노벨상 수상자감’으로 불리던 물리학자는 운동권의 기수로 변신해 1968년 세계혁명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한다. 하지만 전공투 운동은 패배하고, 그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 정치에 투신하지도 않는다. 대중의 관심을 뒤로한 채, 60대의 나이에 <과학의 탄생>이라는 훌륭한 과학사 책을 내놓는다.

올해 78살의 야마모토는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며 일본의 비판적 지성으로 거듭난다. 최근 저작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은 개국 이후 150년 일본의 과학기술 발자취를 살펴본 책이다. 책 제목에 나와 있듯, 일본의 과학기술은 ‘총력전 체제’에서 형성된 것이다. 서구 열강에 쫓겨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을 위해 도입된 과학기술은 청일, 러일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한 과학기술의 총동원 체제는 일상화되었다. 일본의 과학기술을 키운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아시아의 약소국을 침략하고 사회적 약자를 희생해서 얻은 과학기술의 발전이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일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고도성장을 한다. 총력전 사상을 그대로 계승해서 전쟁으로 경제 대국을 일구었다. 이때 과학자와 기술자는 아시아 침략에 대한 자각도, 전쟁 협력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는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고 연구 역량이 커졌지만 대학의 자율권과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 1960년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은 이러한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에서 나왔다. 청년들은 총력전 체제를 떠받치는 부속물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야마모토는 회고록 <나의 1960년대>를 통해 젊은 날의 꿈과 시대정신을 소상히 증언한다. 그 연장선에서 쓴 책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이다.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 과학기술의 태생적 한계를 고찰하고,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전공투 운동 당시 야스다강당 앞에 선 야마모토 요시타카(오른쪽). 와타나베 히토미(渡邊眸) 촬영. 한겨레 자료 사진
이러한 야마모토의 행보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그는 방사성 폐기물로 폐허가 된 현장에서 일본 과학기술의 파탄을 읽는다. 후쿠시마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19세기부터의 파행적 전기에너지 사업이 20세기에 폭주하다 막다른 길에 이른 것이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내다버린 과학기술의 총력전 체제가 가져온 결과였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 관료나 기술엘리트들은 반성보다 또다시 전쟁을 선택하고 있다. 2014년 아베 정권은 각료회의에서 무기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폐기한다. 2016년 4월에는 “핵무기도 필요 최소한에 그친다면 보유하는 것은 반드시 헌법이 금지하는 바는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린다. 최근까지 무기 수출과 군학협동 연구를 추진하고, 미래의 핵무장을 준비하고 있다.

야마모토는 물리학자의 삶을 버리고 재야의 과학사학자가 되었지만 그의 저술에는 노벨 물리학상보다 값진, 역사의식이 담겨 있다. “과거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했고 두 차례의 원폭 피해를 보았으며, 후쿠시마 원전을 일으킨 나라가 책임 있게 군수산업 철수와 원자력 사용의 탈각을 선언하고 장래 핵무기의 가능성을 확실히 부정해야 한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정인경의 과학 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