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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5 05:01 수정 : 2019.11.15 20:56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지음, 강병철 옮김/김영사(2019)

진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놓은 가장 좋은 증거는 약물 내성(저항성)에 대한 이야기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항생제에 적응해서 새로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적응과 변이의 전략으로 세균들이 진화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므로, 인간과 세균의 무기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도 내성이 있는 돌연변이는 다시 출현하는 법이다. 암세포 역시 이에 못지않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암은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우리 몸속에서 진화한다. 그토록 암 정복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 면역항암제가 항암치료에 혁신을 몰고 왔다. 기존의 항암제와는 달리, 살아 있는 자연의 방어체계인 면역력을 깨워서 암세포와 맞서게 하는 것이다. 찰스 그레이버의 <면역항암제가 온다>는 암 치료에 이런 새로운 흐름을 만든 의사와 연구자, 환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암과 면역계의 관계가 밝혀지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데 무엇보다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면, 사물 자체도 변한다.”

암은 어떤 자각증세 없이 찾아온다. 열이 나지 않고 염증이 없으니, 과학자들은 면역계가 암과 싸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암세포가 정상 세포와 너무 비슷해서 면역계가 인식하지 못하며, 암에 대한 면역감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류 의학계의 믿음은 제임스 앨리슨, 로이드 올드, 밥 슈라이버 등 몇몇 종양 면역학자들에 의해 뒤집힌다. 이들은 의료계의 예외적인 사례에 주목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면역계가 병든 세포인 암세포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면역세포는 암세포가 생겨나자마자 제거에 나선다. 그런데 암세포들은 계속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면역계의 포위망을 뚫고 교묘하게 면역계의 공격을 따돌린다. 자궁 속 태아가 면역계의 공격을 피하는 것처럼 암세포는 면역세포에 내장된 안전장치를 역이용한다. 바로 면역계가 건강한 자기 세포를 지키려고 설치해둔 ‘면역관문’을 교란하는 것이다. 암세포는 이들 면역관문에 다가가서 공격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걸어두는 것처럼 면역반응이 중단된다.

이 원리를 이해한 과학자들은 암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면역관문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면역관문 억제제’를 개발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암 치료와 다른 방식이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암이 면역반응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도록 해서, 면역계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 면역요법’이다.

이 책은 면역계의 오래된 수수께끼를 풀어준다. 우리는 왜 면역계가 암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암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는데 과학자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잡한 면역반응에서 우리가 이해한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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