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워터멜론 슈가에서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비채 펴냄(2007) ‘워터멜론 슈가’는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이름이다. 아울러 이 공간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이곳 사람들은 수박을 끓여서 정제한 수박당, 즉 워터멜론 슈가로 집이며 다리 같은 많은 것들을 만든다. 수박 기름으로 램프에 은은한 불을 밝히고, 수박씨 잉크로 171년 동안 네번째가 될 책을 쓰기도 한다. 워터멜론 슈가에서의 삶은 간결하다. 사람들은 ‘아이디아뜨’라는 마을 공동체에 모여서 팬케이크와 커피로 배불리 먹고, 지나가던 아이가 건네는 딸기를 나눠 먹는다. 그들은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거나, 이제 아무도 오가지 않는 다리 위에 불을 밝히거나, 워터멜론 슈가를 끓이는 아궁이에 나뭇가지를 툭툭 던져 넣는 정도가 노동의 전부다. 그들은 기뻐도 너무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않는다.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슬퍼하거나 혹은 너무 분노하는 것은 늘 술에 절어 사는 ‘인보일’ 패거리나, 지난 시절의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잊혀진 작품들’ 근처를 자꾸만 서성이는 ‘마가렛’ 정도다. 그밖에 워터멜론 슈가는 “아주 단순하고 모든 게 제자리에” 있다. 워터멜론 슈가에는 요일마다 서로 다른 일곱 색깔 태양이 떠오르고, 송어가 뛰어오르는 강에는 유리로 만든 무덤이 있고, 무덤 속에서는 도깨비불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연인의 손길은 부드럽고 키스는 달콤하다. 그런데 워터멜론 슈가가 처음부터 이렇게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이곳엔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야성의 존재 ‘호랑이’들이 살았다. 주인공 ‘나’는 어릴 때 호랑이에게 부모를 잃었다. 아침을 먹는데 느닷없이 호랑이들이 들이닥쳐서 부모를 잡아먹는다. 호랑이들이 먹다 말고 산수 숙제를 도와주고, 친절하게도 아이를 밖으로 내보낸 뒤 마저 먹어치운다. 호랑이들은 무시무시한 한편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존재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잡아먹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근사한 대화를 나눌 줄도 안다. 호랑이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사람들은 마지막 호랑이를 죽여서 불태운 자리에 송어 부화장을 지었다.
권영민 돌베개출판사 청소년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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