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중국사상문화사전미조구치 유조 엮음, 김석근·김용천·박규태 옮김/책과함께 펴냄(2011) 70명 가까운 학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기획, 집필, 완성하여 출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자신들의 문화·사상·역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면, 작업의 난이도를 넘어, 꼭 필요한 일인가라는 반문을 당하기 십상이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작업에 10년 가까운 세월을 투여했다면, 그리고 그 작업의 대상이 되는 문화·사상이 자신들과 적대적이면 적대적이지 우호적일 리 없는 나라의 것이라면, 반문을 넘어 비난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학문이란 그런 것이다. 시간, 공간, 적의, 우호, 효율, 성과, 인정 같은 단어는 뒤로 넘기고 오직 지성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삶을 투여하는 작업, 그리하여 인류가 우리에게 전해준 온갖 자취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삼아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문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어떤 희생과 비난도 감수할 수 있는 게 학문의 세계요, 학자의 운명이다. <중국사상문화사전>은 이런 면에서 여러모로 괴팍한 책이다. 중국 민족을 낳은 사상과 문화의 시원을 하나하나 밝혀나가면서 사상·문화적 개념의 생성·변화·확장 과정, 그리고 그 개념들이 인간의 삶과 사고,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중국 민족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과 민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를 66개의 글자 또는 어휘를 통해 분석한 이 책은, 놀랍게도 일본의 학자 70여명이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일은 중국 학계가 할 일이 아닌가요?”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바꾸어 생각하면, 우리 겨레의 사상·문화적 발원으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의미의 생성·변화·확장·적용 과정을 다른 나라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면 우리는 어떤 감회를 갖게 될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작업은 누구의 인정을 받고자 한 것도 아니요, 동아시아의 사상·철학·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사대적 행동의 결과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우리 문화와 사상의 형성에 뿌리가 되었고 이 순간에도 의미를 갖는 주요한 개념들 하나하나에 대해 수천년에 걸친 형성·변화·작동의 과정을 추적하여 정리한 결과는 작업의 주체인 도쿄대학 출판회의 창립 50주년 기념 성과물로 끝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중국의 사상과 문화가 끼친 영향은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게 현실일 테니 말이다. ‘하늘’ ‘도’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국가’ ‘혁명’을 거쳐 ‘제사’ ‘귀신’, 그리고 ‘음양’ ‘풍수’ ‘의학’에 이르는 현실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읽다 보면 왜 우리 이웃 국가의 사상과 문화를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작업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해하는 게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사대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한 문명권의 형성·발전에 뿌리가 된 실체에 접근해가는 환희의 과정인 것처럼 말이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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