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정승구 사진·글/아카넷 펴냄(2015) 서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책을 파는 곳인가, 문화를 전달하는 곳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터넷 서점을 위해 진열장 구실을 하는 곳인가! 아니다. 서점은 좁게는 한 고을, 한 도시, 넓게는 한 나라, 궁극적으로는 문명의 기록을 보관, 확산시키는 요충이다. 그런 까닭에 서점이 없는 고을, 도시는 문화의 사막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점이 없는 고을에서 사는 데 익숙하다. 하기야 아무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명을 힘들여 캐내려는 자가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누가 책을 거론하겠는가. 한 개그맨 말마따나 ‘그저 웃고 떠들며 히히덕거리며’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언론, 사회, 위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에 서점의 생명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서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책이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오직 그 수단을 통하지 않고는 미래로, 창조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모여 오늘도 책장을 뒤적인다. 교보문고가 있다. 그곳 책꽂이 또한 다른 서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이 팔리는 책들이 무수한 책꽂이를 차지하고, 발에 걸리는 책들 또한 더는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는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결코 잊힐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을 담은 채 온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자리에서 평생을 기다리다 쓸쓸히 사라져갈 바로 그 책을 만나러. 그런데 오늘 그곳에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 서점에서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직원들이 손글씨로-아, 이 단어는 얼마 만에 숨을 쉬는가!-자신이 읽고 감동받은 책의 서평을 써서 추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아무도 볼 수 없는 후미진 곳이 아니라, 당당히 가운데 서가에서.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서가를 유명짜한 책이 아닌, 오직 쓴 이의 영혼과 의지를 담은 무명의 존재에게 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기에 나는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맨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을 빼들었다.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참으로 그곳이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낯선 책 한 권을.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앉은자리에서 첫 쪽을 펼친 후 마지막 쪽을 확인하고야 덮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책이야! 여행 관련 정보는 단 한 줄도 없지만 지금 당장 쿠바행 짐을 싸게 만드는 책! 꼭 가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늘 머릿속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곳, 바로 그곳으로 향하기에 충분한 용기와 실천의 힘을 전해주는 책! 한 달 동안 둘러본 친구들이 이제 다 파악했다는 듯이 설명하던 내용이 사실은 쿠바라는 살아 숨 쉬는 땅이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에 놓인 어느 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 진짜 쿠바의 펄떡이는 심장을 열어 보여주는 책! 그 누구보다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를 가이드로 모신 책!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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