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 펴냄(2014) 흔히 모든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인생도 그런 ‘선택’의 무수한 연속이라고 여긴다.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라는 사르트르의 경구도 우리의 삶이 탄생과 죽음 사이의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선택’은 자유, 평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무엇이든 내 ‘자유의지’에 따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관념, 누구에게나 그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관념. ‘선택’은 그런 관념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레나타 살레츨은 이런 관념에 의문을 던지며 ‘선택’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살레츨의 진단에 따르면, 간단한 상품부터 직업, 배우자, 자신의 정체성까지 스스로 선택한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위치에 오른 것은 그것이 이러한 착각을 손쉽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겨울 외투 구입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말끔하게 진열된 매장 여기저기를 오가며 내게 어울리는지 입어보고 가격표를 살핀다.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높이는 ‘합리적 선택이론’의 소비자 모습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소비는 남이 입으니까 나도 입어야 한다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더욱 휘둘린다. 자기 계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고 개척하라는 자기 계발의 충고는 외국어를 배우고, 몸매를 가꾸는 새로운 자기 계발의 유혹으로 이어진다.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 남는 것은 ‘남들 다 하는데 난 안 해도 괜찮나’ 하는 불안감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욱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피로감이다. 이 불안감과 피로감은 다시 우리를 ‘자기 계발’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이처럼 선택은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하고 더 피로하게 하고 더 탐욕스럽게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의 선택지가 사회적 분할에 따라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 그럼에도 선택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착각에 갇혀 그러한 제한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 넓은 집에서 살기 위해, 더 좋은 차를 사기 위해, 더 예쁜 옷을 입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러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시선은 바로 그 ‘선택의 폭’ 안에만 머무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관계들을 변화시킬 선택의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살레츨이 선택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선택의 독재’ 사회로 보는 이유다.
정호영 푸른역사 편집과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