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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31 20:26 수정 : 2016.12.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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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평설 병자호란 1·2
한명기 지음/푸른역사 펴냄(2013)

 

“고국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 왜 나를 죽을 곳으로 내모는가.” 1675년 봄, 청나라를 탈출하여 만주 벌판을 달려온 사내가 압록강변에 도착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청나라로 끌려가 노비로 살다 38년 만에 탈출한 조선인 안단(安端)이었다. 그러나 의주 부윤 조성보는 때마침 의주에 와 있던 청나라 칙사들에게 안단을 넘겨버렸다. 그리던 고국 땅을 눈앞에 두고 끌려가야만 했던 안단은 절규했다.

“제 딸이 속환되어 왔는데, 사위가 딸을 버리고 새장가를 들려고 합니다. 원통합니다.” 1638년 봄, 조정에 상소가 올라왔다. 신풍부원군 장유가 ‘실절한 며느리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며 아들의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한 것이다. 친정아버지인 전(前) 승지 한이겸으로서는 원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출가했던 딸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것도 억울한데, 엄청난 몸값을 주고 속환해 오자 오랑캐에게 절개를 잃었다며 이혼하겠다니.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며 한이겸은 절절하게 호소했다.

380년 전 ‘조선’은 ‘지옥’이었다. 1636년 12월 9일에 시작하여 1637년 1월 30일에 종료된 청의 조선 침략 전쟁 병자호란이 발발한 것이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이 병자호란을 저자의 ‘설’과 ‘평’으로 살핀 책이다. 책에 담긴 전쟁의 참상은 참혹 그 자체다. “인조는 ‘오랑캐 추장’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쳤다. 포로로 잡혀 끌려간 백성도 수십만이었다. 끌려가는 도중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죽었다. 탈출하려다 실패하여 발뒤꿈치를 잘리기도 했다. 수많은 여성 포로들이 청군의 첩으로 전락했다. (…) 몸값을 치르고 돌아왔던 여성 포로들은 고국에서 다시 버림받았다.”

‘지옥(Hell)’과 ‘조선’을 합성한 신조어 ‘헬조선’이 2015년 가장 공감되는 신조어 2위에 올랐단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의 ‘헬조선’에는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절망과 좌절과 분노가 녹아 있다. 아무리 ‘노오력’해봐야 팍팍하기만 한 삶에 대한 절망. 부모 잘 만나 쉽게 자리 잡는 ‘금수저’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흙수저’ 인생에 대한 좌절. 열심히 일해도 도무지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 권력은 누릴 대로 누리면서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비판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권에 대한 분개. 이런 현실에 청년들은 지옥을 떠올리고, 근대화 이전의 조선을 호출했다. 그래서 ‘헬조선’이다.

정호영 도서출판 푸른역사 편집과장 
진짜 지옥이던 1636년 조선의 전쟁에 비할 바 없겠으나 2015년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도 삶은 전쟁이었던 모양이다. 10대 때는 입시전쟁에, 20대 때는 취업전쟁에, 30대 때는 주택전쟁에 내몰리는 이들의 눈에 비친 2015년 대한민국, 380년 전 조선과 얼마나 다를까. 나라 안과 밖의 형세를 읽으려 하지 않고 왕권 지키기에만 골몰했던 인조, 권력과 부를 안겨주는 자리 지키기에만 혈안이었던 반정공신들. 380년 전 그들과 2015년 대한민국 집권층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일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인조 정권, 1636년 지옥의 피해는 온통 백성들 몫이었다. 청년들이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다.  

정호영 도서출판 푸른역사 편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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