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능란한 글솜씨로 풀어낸 ‘천의 얼굴’ 서울 |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서울은 깊다-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전우용 지음/돌베개(2008)
결혼하고 19년째 이사만 일고여덟 번, 결국 20년 넘게 살던 마포구를 떠나 3년 전에 서울 변두리로 밀려났다. 이사 오던 첫해 봄 활짝 피었던 매화 밭도, 장마철에 비를 흠뻑 맞던 개울 건너 푸른 미나리 밭도 온데간데없다. 대규모 택지 개발에 집으로 오는 도로가 공사 차량으로 다 패고 동네는 온통 먼지 구덩이가 되었다. 세상에 이런 상전벽해도 없다.
‘전셋값 폭등’이나 ‘도심 재개발’은 수도 서울의 단면일 뿐,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살아가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서울은 천의 얼굴을 드러낸다. 지난날 우리 부모 세대는 방방곡곡에서 서울로 서울로 올라왔을 터이다. 어느덧 다른 나라에서 일하러 온 사람도 참 많아졌고, 마닐라, 하이퐁, 다카에서 온 엄마한테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이들 컸다. 몇 대째 서울 아래 살았어도 집집마다 이력과 사연도 다 다르다. 잠실 주상복합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사람과 부천 역곡역에서 새벽 첫차로 지하철 1호선, 2호선을 갈아타고 강남으로 일 나가는 이들 눈에 서울은 같은 도시로 보일 리 없다. 뭉뚱그려 ‘서울,’ ‘서울 사람’이라고 하기에 우리가 사는 이 특별시는 너무 복잡하고도 특별하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책 <서울은 깊다>를 무릎을 치며 읽고, 아득하나마 그럴듯한 답을 얻었다. 그렇다. 서울은 깊다! 그 깊은 곳에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총합인 역사가 켜켜이 다져져 있음이다. 몽매한 내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되었으나, 그 뒤로 이만큼 정보를 담고서 전문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두루 갖춘 역사책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역사책이라고만 하기에 너무 재미있는 ‘잡종’이다.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도시공학, 건축에 토목에 문화이론까지 마구 스며들고, 베냐민, 프롬, 푸코, 멈퍼드, 뒤비 같은 학자들의 핵심 이론도 서울의 역사로 들어와 절묘하게 녹아든다.
무엇보다 지은이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한자어로 된 ‘정통’ 역사 용어를 굳이 ‘대중적으로’ 풀지 않고도 구성진 글 흐름에 따라 정확하게 쓰면 그만이다. 전각이나 관청, 관직을 설명할 때면 온갖 전문용어가 총동원되다가도,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보여줄 때는 시대성을 잔뜩 머금은 민중의 입말이 넘쳐난다. 이른바 ‘시정잡배’들이 쓰던 질박한 언어는 따분할 법한 역사책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 놓은 격이다. 거품이 잔뜩 낀 ‘인문서’이나 그 흔한 ‘대중 역사서’와는 ‘클래스’가 다른 진짜배기다(유능한 편집자를 만난 복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정도전과 이방원, 경복궁, 창덕궁, 제중원 이야기는 좀 천천히 또박또박 읽고, 피맛골과 단성사, 화신백화점 얘기는 창문을 열거나 라디오라도 틀어 놓고 읽으면 좋다. 땅거지, 시골뜨기, 서울내기, 라면땅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먼 데서 구수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칼 갈~어!” “구두~
송병섭 삼천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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