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숙 지음/뜨인돌(2012) 꽃이 피고, 꽃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눈이 오고, 다시 꽃이 피고. 시간이 무심코 흘러가던 어느 날 문득 흰머리가 나고 눈이 침침해져서 화들짝 놀랐다. 나도 이 순환의 일부라는, 모든 생명이 늙고 병들고 죽는 자연의 일부라는 새삼스러운 진리가 내 뒤통수를 때렸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게,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죽음에 이르는,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은 내 머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딱 한발 앞서 있었다.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병실에서 나가야 했으므로 서둘러 장례식장을 잡아야 했고, 거액의 병원비를 정산해야 했으며, 상복은 어떤 옷을 입을지, 제단은 얼마짜리로 할지, 납골함은 어떤 재질로 할지, 육개장을 할 것인지 소고기 뭇국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슬픔은 장례를 모두 마치고 나서 한참 뒤에야 후회와 함께 천천히 밀려왔다. 연명 치료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 긴 후회의 시간에 읽은 책이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책을 조금만 일찍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이 책은 19년간 삶과 죽음의 최전선인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필자가,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언제든 환자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잘 보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고민들을 던져 준다. 또한 제3자의 관점에서 당사자(환자와 보호자)들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객관적이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지금대로라면) 장수의 ‘복’을 누리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십중팔구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집이 아닌) 병실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평소에 당당했던 사람들이 환자가 되는 순간 모든 결정으로부터,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되어 무기력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기 쉽다. 최선을 다한다는 이름으로 실시되는 연명 치료가 가족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채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게 할 수도 있다. 보호자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모르고 주변을 서성이다가 소중한 순간을 허망하게 보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이 꼭 그렇게 고통스런 처치를 받으며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중환자실에 고립된 채 죽음을 맞고 싶지 않고, 가족 중 누군가를 그렇게 홀로 보내고 싶지도 않다.” 필자는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이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과 관련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즉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정민용 후마니타스 대표. 정미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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