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엄기호 지음/푸른숲(2010) 처음엔 일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서른을 넘긴, 출산휴가를 마친, 편집자 사람이던 나에겐 일말의 조바심 같은 게 있었고 ‘20대 독자에게 팔 만한 기획거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이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집어 들었다.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이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하며 만난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한 내용을 담았다니 ‘20대 세대론’ 책으로 넘겨짚은 것이다. “이 책은 세대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서문에 등장한 이 문장을 읽자 내가 입고 있던 기대와 바람, 탐욕의 옷은 산뜻하게 벗겨졌다. 그러고는 새 옷을 하나하나 걸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비통과 불편, 해방의 옷이었다. 가장 비통했던 장면 하나. ‘원세대’(원주와 연세대를 합친 말)에 다니는 자영은 자신을 가혹하게 부려먹던 알바 지배인이 연세대에 다닌다는 말에 친절하게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차마 원주캠퍼스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소속을 ‘신촌’으로 바꾸는 것이 최대 소망인 채, 속한 곳이 아니라 속하고 싶은 곳을 바라보며 “물에 뜬 기름처럼 캠퍼스를 부유”하는 이들에게 자기긍정은 요원한 일이다. 자기긍정이 바닥을 치던 나는, 감히 감정이입이 되어 비통했다. 자영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을까?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면”, “수능을 잘 봤으면” 같은 말. 사회가 계속 들려주었기에, 어느새 스스로에게 속삭이게 되는 그런 말. 정혜윤 선생이 쓴 <사생활의 천재들>의 ‘엄기호 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 사회의 인문학적 수준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개인의 문제로 돌리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는 식의 말은 상황을 모두 ‘개인 탓’으로 돌리기에 후지고 폭력적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우리 사회가 대학에서, 가족 내에서, 교육에서 ‘문제의 탓을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20대를 포획해왔음을 꼬집는다. 자영이 원세대를 부끄러워하게 된 이유는 ‘열심’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대학을 서열화하고 그걸 빌미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탈락시킨 사회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묘한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는 내가 그동안 사회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살아온 증거였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니, 자기혐오를 멈추려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편이었다. 불편의 골짜기를 지나자, 해방감이 들었다. 내 문제가 나 때문, 즉 내가 게으르거나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포획 그물이 느슨해진 기분이었다. 나 자신을 긍정할 용기를 얻었으니, ‘20대에게 팔 기획 아이디어’보다 값진 효용을 취한 셈이다. 6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의 메시지는 낡기는커녕 지금 더 유효한 느낌인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되레 진행형이거나 확장됐기 때문이다. “20대는 힘든 일은 안 하려 든다”는 비난은 오늘날 “모자란 게 없는 시대에 우울증 타령이냐”는 말로 탈바꿈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20대가 보수화했다”는 언어로 강경해졌다. 몰이해와 모독은 이제 20대만을 향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를, 성소수자를, 10대를, 노인을, 장애인을, 난민을 향한다. 엄기호 선생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 이 말을 떠올린다. “아무도, 다른 이의 삶을 모독할 권리 따위는 없다.” 이은정 푸른숲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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