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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5 06:00 수정 : 2019.04.05 19:58

[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사이행성(2018)

솔직히 고백하건대, 몸집이 ‘매우’ 거대한 사람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놀란다(여기서 매우 거대하다는 상태는 단순 과체중이나 고도 비만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을 말한다). 현실에서 혹은 영화에서 남녀 불문하고 그런 사람을 보면, 속으로 ‘어쩌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든다. 각자의 삶엔 각자의 이유와 모양이 있는 법이지만 ‘어째서 몸을 저렇게까지…’란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이 또한 나의 편견으로 타인의 삶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몸집이 매우 거대한 사람을 보고 처음으로 충격 받았던 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봤을 때다. 전문 배우는 아닐 거 같은데 저런 사람을 어떻게 캐스팅한 거지. 영화 속 엄마는 남편이 목매달아 자살한 후 그 충격으로 침대 밖으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채 몸을 크게 불린 사람이었다. 상실과 슬픔의 허기를 먹을 것으로 채웠던 엄마는 이미 손쓸 골든타임을 놓친 사람처럼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체념한 듯 보였다. 악순환 혹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 몸이 마치 가장 타이트한 감옥이 되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장악해버렸다는 느낌.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 사이행성 제공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를 풀샷으로 봤을 때도 많이 놀랐다. 그를 책 속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유튜브를 통해 봤는데 매우 거대했다. 얼굴만 클로즈업된 프로필 사진 속에서 게이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는 카메라 렌즈가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다. 그 사진 프레임 너머로 저렇게 큰 몸이 이어져 있었다니. 그의 몸이 왜 거대해졌을지 의아했다.

“내가 가장 살이 쪘을 때, 나는 키 190㎝에 261㎏이 나갔다. 나 또한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숫자이나 그 시점에서 이 숫자는 내 몸의 진실이었다. 이 숫자를 들은 건 플로리다주 웨스턴에 있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였다. 어떻게 그 지경까지 되도록 날 내버려두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안다.”

<헝거>는 게이가 그런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묻는 ‘왜’에 대한 힘겨운 고백이자, 가능하다면 다음으로 계속 미뤄두고 싶었던 자기 내면의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게이는 왜 자신의 몸을 그렇게까지 거대하게 키워 요새처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매우 천천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비포’와 ‘애프터’로 가른, 그러니까 거대한 몸이 되기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나뉘게 된, 그 경계가 되었던 끔찍한 사건에 대해 들려준다. 게이가 열두 살 소녀였을 때 숲에서 겪었던 사건을.

<헝거> 뒤표지에는 이런 카피가 쓰여 있다. “한 여성의 숭고한 승리이자 지상에서 가장 용감한 고백록”. 잠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일일지. 게이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되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 잃어버린 것들이란 자신의 존엄과 목소리다. 한 사람의 몸은 하나의 절대적 세계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헝거>는 몸의 형태로 다가오는 타인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게이의 숭고한 용기가 아니었다면, 쉽게 깨달을 수 없었을 지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

나희영 바다출판사 기획편집부 팀장

※ 이번 주부터 나희영 바다출판사 기획편집부 팀장이 집필합니다. 4주 간격으로 세 권의 책을 소개하며, 그중 한 권은 자사 책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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