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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3 06:00 수정 : 2019.05.03 19:44

[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지음/민음사(2018)

지난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허리를 삐끗했다. 몸을 수그린 어정쩡한 상태에서 재채기를 한 게 원인이었다. 출근을 준비하던 중에 눈앞이 캄캄했다. 걸으려는데 오른쪽 다리가 쑥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충격을 줄이는 아장아장 걸음으로 근근이 출근한 뒤 점심시간에 한의원으로 갔다. 허리를 똑바로 펴지 못한 상태로 엑스레이를 찍고는 결과를 기다렸다. “허리가 일자네요. 목도 일자고요.” “헉, 그래요?” 나는 그날 이후 바로 도수 치료에 들어갔다. 도수 치료사가 내게 “운동을 전혀 안 하셨나 봐요?”라고 물었다. 그동안 아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아예 안 한 건 또 아니라는 생각에 “그래도 요가를 꽤 꾸준히 한 편인데요…”라고 했더니 일자 허리에 요가는 하면 안 되는 운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말마의 비명이 난무하는 도수 치료를 열두 차례 마친 후 가장 궁금한 건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나였다. 일자 허리는 작은 충격에도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엄포를 계속 주입당한 탓에 운동은 ‘아프지 않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가 되었다. 무슨 운동이 됐든 바로 시작하면 절반은 성공일 텐데 자꾸 뭘 할지만 고민하는 중이다. 퇴근 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운동하러 가는 게 이만저만 귀찮고 까다로운 게 아니다. 선뜻 6개월 장기 등록을 하고는 절반도 가지 못하는 나의 의지를 타박하는 날들도 잦았다. 자책하지 않고 즐겁게 운동하는 법 없을까. 신나게 땀 흘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있으려나 내게 맞는 운동?

“처음 공을 찼을 때 복사뼈께에 닿던 공의 느낌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앞으로 밀리는 그 느낌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축구공을 차고 있다. 내가 지금 축구공을 차고 있다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김혼비 작가에게 딱 맞는 운동은, 그렇다, 축구다. 그는 회사원이자 축구 선수다. 그에게 축구라는 운동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 책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하고 사랑하게 된 여자들의 땀내 진동하는, 통쾌하면서도 어딘가 뭉클한 에피소드로 꽉 차 있다. ‘여자’와 ‘축구’를 둘러싼 서사를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 보이는 김혼비는 축구에 대한 욕망이 취미 수준을 넘어 거기에 인생의 일정 부분을 당당히 건 사람이다. 종아리에 단단한 알이 박여도, 태양빛에 피부를 검게 그을려도, 달릴 때 걸리적거리는 머리를 숏컷으로 쳐내도 아무 상관없다. 이 모든 게 축구를 잘하기 위한 최상의 핏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스포츠에 젠더를 부여할 수 있다면 축구는 대표적인 남성 스포츠다.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기보다는 운동장 한구석에서 발야구나 피구를 한다. 운동장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격렬하게 패스를 주고받는 역할은 남자아이들에게 주어진다. 운동장을 넓게 쓰는 법을 그들은 축구를 하며 익힌다. 김혼비는 남자들의 공간이었던 운동장에서 여자 축구의 피, 땀, 눈물을 “정말이지 기절”할 만큼 우아하고 호쾌하게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 백퍼센트 축구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나는 분명 그렇다. 하지만 아직은 축구가 단체 스포츠라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일단은 마음에 드는 축구화와 축구공부터 사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 혼자서도 하기 좋은 인사이드킥부터 연습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신이 난다.

나희영 바다출판사 기획편집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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