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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1 06:00 수정 : 2019.05.31 19:53

[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바다출판사(2017)

칸 황금종려상이라고?! 정말? 지난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깜짝 놀랐다. 봉준호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니! 심지어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니! 정말 판타스틱한 일요일이었다. 기대되는 수상 소감. 봉준호 감독은 먼저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영감을 준 앙리 조르주 클루조, 클로드 샤브롤 감독에게 헌사를 보낸 후 함께한 훌륭한 스태프들과 위대한 배우들에게 감사와 우정의 말을 길게 전했다. 특히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4편이나 함께한 배우 송강호에게 그 마음이 각별했다.

봉준호 감독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일찍이 ‘영화감독에게 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했던 말이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그리고 영화라는 세상이 안겨준 우정.

올해 봉준호 감독의 수상으로 2년 연속 아시아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 <어느 가족>으로 이 상을 받았다. 그해 고레에다의 수상은 나에게 유독 남달랐다. 그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출간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영화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을 만든 고레에다가 데뷔작에서 근작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차분히 전하는 책이다. 평소 그의 영화를 아끼는 팬의 입장이었는데 책을 만들면서 그의 온정 넘치는 사람됨에 존경의 마음이 배가됐다.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 현장에서의 추억을 더듬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따뜻하고 재능 있는 스토리텔러인지 뭉근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그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지만 그걸 드러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있는 태도를 가진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보거나 읽거나 한 감독의 생각 중 고레에다만큼 진솔하고 소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의 생각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 책에는 영화제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심지어 하나의 챕터는 오로지 영화제에 대한 생각으로만 꾸려져 있다. 고레에다는 데뷔작 <환상의 빛>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된 후로 세계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지금까지 대략 120개 정도의 영화제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는 이 경험을 책에 담아 영화를 찍고자 하는 후배 감독들에게 영화제를 어떻게 준비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조언을 주고자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고레에다는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를 보석처럼 박아놓았다. 바로 1998년 낭트 영화제에서 지아장커와 함께 그랑프리를 공동 수상했을 때 시상자였던 허우샤오셴 감독과 셋이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제 중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허우샤오셴 감독이 사준 과일맛 껌을 아무래도 먹을 수가 없어서 소중히 호텔 방으로 가져와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추억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는 이 사람 참 귀여운 분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책에서 그가 들려주는 많고 많은 에피소드 중 여섯 줄로 풀어내는 이 짧은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으로부터 받은 격려와 우정의 껌을 들고는 차마 먹을 수 없어 어딘가 적당한 자리에 놓고 사진 찍었을 그 마음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희영 바다출판사 기획편집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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