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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29 19:38 수정 : 2016.12.29 20:16

양경언의 시동詩動걸기

이장욱 ‘신발을 신는 일’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새해를 맞이하는 일의 의미를 새긴다. 나는 주로 은유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이해하는데, 가령 한해를 시작하는 일을 신발끈을 고쳐 매는 일처럼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성의를 다해 신발을 신어도 한해가 마무리될 쯤의 신발굽은 닳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다보면 퍽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되고, 보다 더 잘 걷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세를 취할지 새삼 궁리하게 된다. 올해는 유난히 신발끈을 고쳐 매기가 쉽지 않다. 실은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살필 새 없이, 자고 일어나면 접하게 되는 많은 일들에 여전히 휘청한다. 나만 이런 것 같지 않다. 2016년 동안 ‘우리’에겐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대개가 현재진행형이다. 저물긴 저무는가. 시작하기는 하는가.

“나에게는 햇빛을 가리던 손차양과/ 손등에 고였다가 사라진 햇빛 같은 것이 있었는데// 손가락을 신발 뒤축에 넣어 잘 신고/ 발끝을 탁탁 바닥에 부딪쳐도 보고/ 제대로 신었구나,/ 생각하는 것인데// 아직 신발 속에 무엇이 있다./ 자꾸 커지는 무엇이./ 나와 함께 이동하는/ 내가 아닌/ 전 세계를 콕콕/ 찌르는// 뾰족한 돌인가? 죽은 친구일 거야. 적이다. 아니/ 내가 한 말인가.// 우리는 함께 걸어 다녔다/ 그것은 이물질이었다가/ 나의 주인이었다가/ 차가운 생활이 되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고 잘 걸어 다니고 낯선 사람들을 잘 만났는데 드디어/ 손가락을 들어 어디를 가리켰다. 목적지인가? 옛사랑인가? 오늘의 약속이라든가 사망시각/ 어쩌면/ 한 걸음 떨어진 곳// 나는 그리로 걸어갔다./ 그런데 왜 당신은 다리를 저십니까?/ 길에서 누가 물어왔다./ 그의 눈과 코와 입이 영/ 보이지 않았다.”(이장욱, ‘신발을 신는 일’ 전문)

“손가락을 신발 뒤축에 넣어 잘 신고” “제대로 신었구나” “생각”하며 걸어 나가도, 우리의 신발밑창은 때때로 바닥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시는 우리가 잘 걷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신발의 능력을 방해하는 건 무엇인지에 더 골몰한다. 무엇이 내 걸음을 흐트러뜨리는가. 그것은 나의 부끄러움이거나 나의 두려움일 수 있다. 혹은 나의 것으로 인정하긴 싫으나 어느새 나를 지배하는 좋지 못한 기억들, 나의 존엄에 상처를 입히는 사건들…. 그런 것들은 대개 걷고 있던 우리의 등을 구부정하게 만들고 균형을 잃게 만든다. 물론 거기에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연기를 할 순 있지만,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그것’을 떳떳이 겪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나 자신이 먼저 ‘왜 제대로 가지 못하느냐’고 질문을 던져도 모를 일이다.

2016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발랄한 은유는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우리의 삶 뒤로 남겨지는 환멸과 탄성을 오가는 발자국을 보았다면 지금 서 있는 곳에서부터 신발 끈을 고쳐 매볼 것, 나의 자세를 살필 것.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무언가가 있다 해도 그와 어떻게 관계할지 생각해보고, 다르게 발을 굴려볼 것. 지쳐도, 용기를 낼 것. 거리의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 걸을 우리의 새해를 상상하면서.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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