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의 시동詩動걸기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 "선생님은 왜 온기를 가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나요?" 수업을 막 마쳤을 때 한 학생이 찾아와 물었다. 뾰로통한 표정이 그의 질문을 나에 대한 책망으로 들리게끔 만들어서 나는 다소 당황했다. 온기를 가진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묻자 학생 왈, 본인은 문학을 하는 사람은 냉철하게 세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비관과, 헛된 희망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은데 선생님의 방식은 그렇지 않단다. 요컨대 당신은 너무 순진하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가능성에 힘을 싣는 방식이 '온기'로 표현된 것이라면 나는 그러고 싶다는 식의 답을 했지만, 저 질문은 내내 다른 형태로 내게 돌아왔다. 이를테면 온갖 극악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삶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몇몇이 손바닥을 뒤집듯 전쟁과 평화를 함부로 결정하려 들고, 계속 살아 있다 하더라도 어느 날 느닷없이 폐허 더미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세계에서, 혹은 피해를 입은 이에게 상처를 안기는 데 익숙하고, 많은 이들이 삶다운 삶을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더 나은 다음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거두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현실의 변화는 막연하다는 '징그러운 진실'을 알면서도, 지금의 삶을 끝끝내 긍정할 수 있는가? “꽃은 꺾고 본다/ 처음 보는 나비는 잡고 본다/ 해 질 녘/ 시들어버린 꽃잎을 하나씩 떼어/ 골목에 무람없이 흩뿌리면서/ 나비 날개 가루를 축축해진 손가락에/ 잔뜩 묻히고 눈 비비면서/ 슬프다, 아이는/ 아름다움이/ 손아귀에 아름다운 채 남아나지 않는다는/ 징그러운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런 아이와 마주치게 된다면/ 꽃과 나비와 네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기 전에/ 너는 우선 당장 전속력으로 달아났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지, 따라서 너는/ 진실의 가장 비관적인 판본을 만나게 된다;/ 자세히 보면 다 징그럽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렌즈 세공의 기나긴 도정이 시작되었다/ 세간의 추측과 달리/ 망원경과 현미경이 모두 필요하다/ 아, 만화경도 물론”(정한아, ‘스물하나’ 전문) 아이의 천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도처에 가득할지라도, 시에서 "너"는 달아나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이 태도는 용감해 보인다. 진실을 제대로 대면하는 일에 쓰이는 렌즈도 기꺼이 세공하겠다는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징그러운 진실’을 감당하기 위해선 ‘망원경’, ‘현미경’ 말고도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지금 확인한 진실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만화경’, 그 우연하게 빚어내는 이미지가 추동하는 엉뚱한 진실, 지금 현실에서 출발한 다음 현실을 보는 방식을! 변할 게 없다는 냉소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는 환멸을 전하는 일은 오히려 쉽다. 징그러운 나비를 통해 무심코 느낀 아름다움에 대해서 책임을 질 생각이 전혀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징그럽더라도 그것이 나비라면 나비, 삶이라면 삶. 나는 여전히 이 삶을 책임지려는 온기를 믿는다. 이는 나를 믿고 질문을 건넨 학생에게 전하고픈 답변이기도 하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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