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김복희, ‘구원하는 힘’<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민음사(2018)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어떤 경우에 더 귀 기울이는지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더욱 잘 읽히는 문장을 쓰고 싶거나, 잘 들리는 말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 때마다 갖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이것은 다른 갈래의 고민으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가령 말이 안전하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자신의 말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위치와 그렇지 못한 위치가 나뉘어져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처음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참’으로 받아들일까. 어떤 말을 진짜라고 믿을까. 인간의 말(言)이란 언제나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이르고자 하는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미끄러짐, 갈급과 어긋남을 품고 있어서 제 아무리 소통을 위해 꺼내들었다 해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때가 많은 것이라는, 그 때문에 말을 들을 때에도 무엇을 취사선택해서 들을지 당연히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이 맞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듣는 어떤 말조차도 그것이 어디에서 발원했는지를 매양 새삼스럽게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말이 전해지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그 말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또한 그 믿음 역시도 언제나 의심의 대상으로 놓여야 한다는 것. 듣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특히나 관성에 기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말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이미지화한 김복희의 시를 읽으면서,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했다. “손바닥에 물고기를 올리고 가만히 쥐어 보았다/ 차갑고 미끌거리는 힘을 냈다/ 따뜻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 계속 서 있었다/ 대궐같이/ 궁전같이/ 동물원 대관람차같이/ 환상 같은 것도 못 보고/ 환상을 만나지도 못하고/ 양동이에서 튀어나온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가/ 그게 꿈틀거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뒷걸음질쳤다 아가미가 움직였다/ 힘을 빼는 데도 힘이 필요해/ 물이 물고기를 털어 내듯이/ 물풀이 모래를 빗물을 만지고 버리듯이/ 다음 날/ 주번이 그것을 화단에 묻었다고 말했다/ 그 애는 땅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이야기를/ 문집에 실었다/ 나는 환상 같은 것도 못 보고/ 화단을 등지고 서 있었다/ 보라 /완전히 이용당한 자/ 신의 선지자같이/ 무엇이 되려고/ 나는 그게 되었다가 아니게 되어 가는 중일까”(김복희, ‘구원하는 힘’ 전문) 손에 쥔 물고기를 “차갑고 미끌거리는 힘”으로 인해 “살아 있는 것”이라고 기억하는 화자는 바닥에 떨어져 죽은 물고기를 환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죽은 것을 죽었다고 말하지 못해 “땅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이야기”가 지어지는 “화단”은 화자에겐 “등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주어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그것을 보고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의적으로 듣고 싶어서 듣는 말, 받아들이고 싶어서 받아들이기로 판단한 말은 가짜 믿음에서 발원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은 사실, 어떤 사안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풍문에 휘둘리기에 급급한 나 자신을 반성하며 썼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