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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김해원 지음/사계절(2015) 누구라 할 것 없이 점점 더 읽는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대다. 설혹 읽는다 해도 짧은 호흡을 선호한다. 몇 년 사이 특정 주제로 엮인 앤솔러지 형태의 청소년 소설집이 여럿 선보였는데, 이 역시 십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안간힘이지 싶다. 김해원의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는 날렵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단편집이다. 몇몇 단편은 무협지를 떠올릴 만큼 유머러스하며 재기발랄하다. 그러나 왕따, 학교폭력,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야기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추락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들의 비루함과 누나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았나 싶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종내는 십대들의 서글픈 이야기다. ‘가방에’라는 단편도 처음에는 아버지로 시작했으나 곧 아들의 서사가 된다. 아주 오랫동안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해온 문장이 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이다. 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면 경준이 아버지는 정말로 보일러실 구석에 있는 가방에 들어간다.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돈을 벌어온 적이 없는 아버지, 술주정에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큰소리를 친다. “내가 돈을 벌려고 얼마나 온갖 더러운 꼴 다 하면서 용을 썼는지” 아느냐고. 경준이는 안다. 세상에는 뛰는 놈과 나는 놈이 있으며, 아버지는 나는 놈은커녕 뛰는 놈에게 당하고 마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걸 말이다. 아버지는 기껏 남의 등이나 쳐서 푼돈을 벌어들이지만 그마저도 늘 더 강하고 힘센 이들에게 빼앗기는 비루한 약자일 뿐이다. 한데 경준이도 실은 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 학교 내 폭력조직 아이들에게 군소리 한 번 못하고 성심성의껏 라면을 끓여주고 있다. 그동안 ‘라면을 끓여 먹여 키운 아이들’이 동네 피시방의 돈통에 손을 대는 바람에 경준이가 그동안 라면셔틀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작 경준이를 제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그토록 잘 보이고 싶었던, 여신과도 같은 사회 선생님 앞에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용기도 배짱도 없는 경준이는 그날 아버지가 그랬듯 가방 속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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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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