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경제대 교수 내가 일하는 대학 도서관장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취임 때 지극히 간단한 총장의 지시가 있었다. “학생들이 좀더 책을 읽게 해 주세요.” 나는 그것을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자’는 과제로 이해했다. ‘도서관적 시간’이라는 것은 내가 만든 말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적 시간’의 반대어다. 도서관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도서관적 시간’을 ‘신자유주의적 시간’이 침식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얘기를 할 작정인데, 그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게 있다. 지난 1일 일본에서는 천황이 퇴위하고 새 천황이 즉위하는 행사가 열렸고 그와 함께 ‘연호’도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지금 언론 보도를 보면, 일본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환영하면서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다. 강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신민’(臣民)이 되는 걸 기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일찍이 2차대전 이후의 천황제를 가리켜 “전근대(프리 모던)와 근대 이후(포스트 모던)의 공범관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알기 쉬운 예로, 공적 문서나 은행거래 서류 등을 개인 컴퓨터에 입력할 때 서기와 연호가 병존·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몹시 번잡스러운 점을 들었다. 알게 모르게 이 번잡스러움에 익숙해져버릴 때 천황제를 마치 자연현상인 듯 내면화한다. 그런 효과를 의도하는 것이다.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제도와 컴퓨터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던한 선진 기술이 상호보완적으로 유착해 있다. 거기에 결여돼 있는 것은 ‘근대’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란 개인의 독립과 존엄, 법 앞의 평등, 기본적 인권, 사상표현의 자유 등 프랑스혁명을 거쳐 인류 역사가 조금씩 구현해온 보편적인 가치를 말한다. 천황제에 대해 식민지배 책임이나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그것이 봉건적 신분제에 토대를 둔 사상이라는 한가지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종언을 고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칼럼 |
[서경식 칼럼]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자 |
도쿄경제대 교수 내가 일하는 대학 도서관장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취임 때 지극히 간단한 총장의 지시가 있었다. “학생들이 좀더 책을 읽게 해 주세요.” 나는 그것을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자’는 과제로 이해했다. ‘도서관적 시간’이라는 것은 내가 만든 말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적 시간’의 반대어다. 도서관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도서관적 시간’을 ‘신자유주의적 시간’이 침식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얘기를 할 작정인데, 그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게 있다. 지난 1일 일본에서는 천황이 퇴위하고 새 천황이 즉위하는 행사가 열렸고 그와 함께 ‘연호’도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지금 언론 보도를 보면, 일본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환영하면서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다. 강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신민’(臣民)이 되는 걸 기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일찍이 2차대전 이후의 천황제를 가리켜 “전근대(프리 모던)와 근대 이후(포스트 모던)의 공범관계”에 비유한 적이 있다. 알기 쉬운 예로, 공적 문서나 은행거래 서류 등을 개인 컴퓨터에 입력할 때 서기와 연호가 병존·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몹시 번잡스러운 점을 들었다. 알게 모르게 이 번잡스러움에 익숙해져버릴 때 천황제를 마치 자연현상인 듯 내면화한다. 그런 효과를 의도하는 것이다. 천황제라는 전근대적인 제도와 컴퓨터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던한 선진 기술이 상호보완적으로 유착해 있다. 거기에 결여돼 있는 것은 ‘근대’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란 개인의 독립과 존엄, 법 앞의 평등, 기본적 인권, 사상표현의 자유 등 프랑스혁명을 거쳐 인류 역사가 조금씩 구현해온 보편적인 가치를 말한다. 천황제에 대해 식민지배 책임이나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그것이 봉건적 신분제에 토대를 둔 사상이라는 한가지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종언을 고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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