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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7 15:11 수정 : 2017.03.17 16:19

그래픽_김지야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Weconomy | 구본권의 디지털 프리즘

그래픽_김지야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4차 산업혁명’ 또는 ‘인공지능·로봇’이 지배하는 시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활발한 논쟁이 일고 있다. 논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사람의 일자리 축소를 가져오는 로봇에 세금을 물리느냐를 둘러싼 로봇세 주장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로봇세 찬반 논란에 저명인사들이 뛰어들며 불씨를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 로봇이 초래하는 변화에 기본소득으로 대응하자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들고나오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용어와 개념, 전제, 논쟁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문제의식의 뿌리는 같다. 현재의 자본주의 조세체계와 분배시스템이 더는 유효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6일치 <워싱턴포스트> 기고(바로보기)에서 로봇세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고용시장 혼란과 소득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책으로 로봇세를 도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는 지난달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로봇에 대해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한 바 있다. 빌 게이츠는 로봇세를 걷어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의 직무전환 지원과 교육 투자 등 새로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로렌스 서머스와 빌 게이츠의 ‘로봇세’ 논쟁

빌 게이츠(왼쪽 사진)와 로렌스 서머스(오른쪽)

서머스 교수의 기고는 빌 게이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그는 우선 로봇세 도입론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로봇만을 지목해 세금을 신설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워드프로세서, 모바일 뱅킹, 자동예약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과 프로그램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해왔는데, 유독 로봇만 새로운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할 근거가 무엇이냐는 문제 제기다. 서머스는 또 로봇세를 도입하게 되면 로봇과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혁신 시도를 좌절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혁신을 통해 경제의 파이를 키운 뒤 올바른 분배를 고민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제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해 선거 국면에서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지난달 18일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기본소득 토크 콘서트’에서 “기본소득은 더이상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복지 개념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 경제 질서와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집권하면) 생애주기별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100만원에, 국토보유세로 마련되는 재원으로 1인당 30만원을 더해 연간 1인당 1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로봇시대 대비한 ‘진짜 -가짜 기본소득’ 논쟁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진짜 기본소득 vs 가짜 기본소득’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지난 2월 28일 <프레시안>에 올린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라는 기고(바로보기)에서, 이재명 시장의 기본소득 안은 ‘가짜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상이 공동대표의 주장에 대해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바로보기)과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바로보기)가 다시 잇따라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의 복지체계를 유지·강화하면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느냐, 기본소득 지급 대상에 제한을 두느냐 등을 두고 ‘진짜-가짜’ 논쟁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여파가 노동시장에 어떻게 진행될지는 전문 연구자들 간의 연구 자료에서도 엇갈린 전망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팀이 2월에 발표한 ‘4차 산업혁명의 고용 효과’ 보고서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을 국가라고 보고 있다. 21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분석에서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질 확률이 70% 이상인 직업 비중은 평균 9%인데, 한국은 그 비중이 6%로 나타나 조사대상국 중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세계로봇연맹(IFR)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은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도입 수가 531대로 조사대상국 가운데 압도적 1위이다. 싱가포르가 398대로 2위, 일본이 305대로 3위, 독일이 301대로 4위이다. 한국의 이런 높은 자동화 진행률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앞으로 공장 자동화율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는 게 연구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래픽_장은영 *그래프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하지만 지난 1월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기술 진보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와 대응’ 보고서는 이와 사뭇 다른 결과를 담았다. 영국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은 미래 기술의 영향을 분석한 모형을 미국 노동시장에 적용한 결과, 47%의 대체확률이 나왔다. 김세움 부연구위원이 이 분석 틀을 가져와 국내 직종별로 기계·컴퓨터가 대체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한 결과, 국내 일자리는 미국보다 훨씬 높은 55∼57%가 컴퓨터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소멸 고위험군’ 직종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로봇세와 기본소득,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충격 효과 등에 대한 논의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해석이라는 점에서 참여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사람보다 로봇 우대 정책을 펴온 한국

앞서 2015년 국제적인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국을 산업용 로봇 채택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로 꼽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국이 현재도 로봇 채택에 세계 최선두그룹이지만, 2025년엔 제조업 노동력의 40%를 로봇으로 대체하고, 로봇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인건비를 33% 감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러한 지표를 기반으로 한국은 이미 상당한 산업현장에서 로봇 대체가 일어났기 때문에 향후 자동화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즉 빠른 로봇 대체는 노동자 대신 기업과 자본가에만 유리한 산업 구조와 경제 질서가 굳어지게 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자본과 노동, 기업과 가계 간의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대기업 사내유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제자리에 머물게 된 데에는 ‘로봇친화형’ 경제정책이 한몫했다. 그 대표적인 게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다. 기업의 투자에 대해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인데, 기업의 투자는 상당 부분이 자동화 설비도입으로 이뤄졌다. 값비싼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면서 노동자 일자리를 줄이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세금마저 깎아준, 일종의 ‘일자리 축소 설비도입 지원금’인 셈이다, 이 제도는 1980년대 초부터 20년간 유지되어오다가 2011년에야 ‘고용창출 투자세액 공제’ 방식으로 바꿔, 일자리를 늘리는 투자에 한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얼리어답터와 ‘테스트베드 국가’로 불리는 한국의 신기술 채택 속도는 세계 으뜸이다. 자동화와 로봇이 일자리에 끼치는 영향은 가습기 살균제가 소비자에게 끼치는 영향과 유사하다. 부작용이나 사회적 영향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최신 기술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한국 문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 정책적 통제가 없었던 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이다. 일자리를 없애는 기업 투자에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20년 넘게 지속했던 풍토는 자동화 충격과 로봇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시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성찰이 더욱 절실함을 일깨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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