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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30 09:25 수정 : 2018.04.30 11:01

Weconomy | 구본권의 디지털프리즘_유럽연합 14개국 256명 전문가 논란 점화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 빠른 발달
대비한 선제적 법제 필요” 맞서
“공상과학 기댄 지나친 법 우선주의
제조사가 책임 면하려는 의도”

핸슨로보틱스의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와 이를 개발한 데이빗 핸슨 박사. 핸슨로보틱스 제공

인공지능(AI) 로봇에게 ‘전자인간’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할까? 4월초 한국과학기술원의 인공지능 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전세계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반대 성명을 내어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로봇에게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hood) 지위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의 집단적 반발이 등장했다.

유럽연합 14개국의 인공지능, 로봇 전문가, 법률가, 기업인 등 156명은 이달 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공개편지를 보내, 로봇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럽의회는 2017년 2월 스스로 배우는 기능의 인공지능 로봇에게 ‘전자인간’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처럼 자율적 판단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이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로봇에게 별도의 법적 지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마디 델보 유럽의회 법사위 부위원장은 “로봇에게 인격권을 부여하는 것이 좋은 방안인지 확실치 않지만, 자율적 기계로 인해 벌어지는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하기에 현재의 법률 체계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전자인간’ 반대

서명을 주도한 프랑스 다르투아대학의 법학 교수 나탈리 나브장은 “전자인간을 도입해 로봇 제조사의 책임을 없애려 하고 있다”고 반대했다. ‘책임있는 로봇재단’을 이끌고 있는 영국 셰필드대학의 노엘 샤키 교수도 “유럽의회 입장은 로봇 제조자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비열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공개편지는 유럽연합의 기존 민법 조항들은 현존 로봇으로 인한 책임성 등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다며 ‘전자인간’ 도입에 반대했다. 서명한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받은 핸슨로보틱스의 인간형 로봇 소피아와 같은 사례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을 공상과학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오도하게 만들고 있다며, 로봇이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영역은 바둑, 영상인식 등 아주 협소한 일부 영역일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 ‘전자인간’ 찬성

‘전자인간’은 사람처럼 투표권, 소유권을 갖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주체적 지위를 갖는 게 아니라는 게 찬성론자들의 설명이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13세기에 수도원에 인격권을 부여함으로서 현재의 법인 개념이 만들어진 것과 유사하다는 견해다. 법인은 계약과 법적 책임의 주체로 기능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전자인간’ 지위를 도입하면 로봇이 사고와 배상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로봇들이 축적하는 부의 일부를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고도의 자율적 로봇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고 그 작동 방식이 드러나지 않는 ‘블랙박스’적 속성의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와 법적 개념을 갖춰야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 논쟁 의미

로봇에게 ‘전자인간’의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는 법인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현재의 영리, 비영리 법인은 한정 책임을 도입해 법인 고유의 목적 수행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법인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다. 법인이 사람과 다른 별도의 책임과 계약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법인의 배경에는 사람이 있다. 로봇에게 전자인간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기존 법인 개념으로 풀려면 한계에 봉착한다. 이미 자율주행차는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 스스로 자율적 인식과 판단을 통해 운행을 하는 상황이다. 운전처럼 사람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과 로봇이 설계자와 소유자가 인지하는 못하는 상황까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상황은 점점 늘어날 것이 명확하다. 자율형 기계와 로봇으로 인한 사고의 유형과 범주를 설계와 개발 단계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없는 게 블랙박스로 작동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특징이다. 이로 인한 사고의 책임을 제조사와 설계자, 소유자 누가 어떤 식으로 분담할지에 대한 논의는 자율차 주행을 대비해 필수적이다.

자율기계의 사고 책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지 않은 현 상태에서 자율주행차의 사고는 제조사의 책임과 피해자와의 개별협상으로 처리되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제조사 차원에서 처리할 수 없게 소유자, 작동자, 설계자의 책임이 복잡하게 얽힌 사고가 일어나거나 해킹과 네트워크 등으로 특정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차원의 광범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전자인간 개념과 지위의 도입 여부와 별개로, 기술 발달을 대비할 수 있는 광범하고 포괄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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