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파미르 생태마을 추진하는 공원국 작가
논문 위해 유목민과 생활하다가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 띄워
참여관찰 비개입 원칙에 어긋나나
“논문보다 중요한 건 인간” 소신
사업실패 뒤 꿈꾸던 작가의 길로
역사·여행서 이어 최근 소설 출간
“<가문비 탁자>는 내 분신같은 작품
무너지지 않는 인간성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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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오라고 할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앞으로 책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중요하다. 학교로 가면 책을 그만큼 쓸 수 있을까 의문이다.”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공원국 작가가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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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계를 탐내지 않고 글쓰기에 올인하는 ‘재야의 고수’. 공원국 작가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누비면서 중국을 무대로 한 소설 <가문비 탁자>를 최근에 내놓은 것은 그가 얼마나 ‘괴물’인지를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면서 글을 쓴다. 내년 1월까지 한국에 ‘잠시’ 머무는 공 작가를 지난 1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타고난 재주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줄은 진작에 알았다. <여행하는 인문학자>나 <유라시아 신화기행> 등 변방과 오지를 발로 누비며 쓴 인문 여행기, <춘추전국 이야기>(11권) 등 중국 고대문헌을 재해석한 역사서는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보여줬다. 피터 퍼듀의 대작인 <중국의 서진: 청의 유라시아 정복사> 등 그가 번역한 책들은 이른바 학문적인 ‘클라스’가 다르다. 또, 최근에는 소설(<가문비 탁자)까지 썼다.
재주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능력이 뛰어난 이가 한둘인가. 그러나, 공원국(44·이하 호칭 생략) 작가에게는 남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일까지 <한겨레> 토요판에 1년 동안 연재했던 ‘공원국의 유목일기’에서도 그런 장면이 얼핏얼핏 보였다. 그는 키르기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을 썼다. 유목민들과 금방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는 것이나,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호수로 무작정 뛰어드는 건(지난 7월27일 기사 ’
초원의 환대에 이방인도 형제되다’)인간에 대한 도저한 사랑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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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공원국 작가가 키르기즈의 파미르 고원 초원에서 자신의 말 ‘바람’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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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파미르 고원에서 돌아왔나.
“10월18일쯤 파미르 고원에서 내려왔다. 수집할 자료를 찾느라 바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들렀다가 두 주 전에 귀국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키르기스 파미르 고원의 작은 도시인 사리모골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살았다. 사리모골에 도착하기 전 겨울에는 러시아 투바공화국의 시베리아 지역에서 보냈다. 박사 학위(중국 푸단대 인류학) 논문 ‘현대 유목민 비교 연구’를 위한 현지조사 겸 참여관찰 과정이기도 하다. 내년 1월부터 10월까지 또다시 키르기스와 카자흐스탄의 파미르 고원, 투바 공화국의 시베리아에서 생활할 계획이다.
-인류학 논문은 다 그렇게 힘들게 쓰나.
“쉽게 쓸 수도 있지만 제 논문은 비교 연구여서 그렇다. 참여관찰을 반드시 해야 하기에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유목문화 가치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
공원국이 유목민에게 천착하는 것은 그들 문화의 가치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국경이나 경계도 없이 유라시아에 펼쳐진 넓은 초원을 떠돌아다니며(자유), 초지를 함께 사용(공유)한다. 키르기스 유목민들은 타지크에서 가축을 몰고 넘어온 사람들에게 지금도 땅을 선뜻 내준다. 낯선 이까지 반기는 것(환대)도 주요 특성이다.
-유목민들이 자유와 공유, 환대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왜인가.
“그게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이나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은 삶의 조건이 아주 나쁘기에 서로 돕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다.”
-유목민의 그런 가치가 정주 생활하는 현대사회에 맞을까.
“정주는 계급의 역사다. 반면에 유목은 완전한 계급을 이루지 못한 사회다. 생산력이 낮아서 그렇다는 게 주류적 해석이지만, 인류학적 관점에서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많이 이동하는 삶 자체 때문에 계급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움직이지 않는 신전이 있어야 사제계급이 발달하고, 성채가 있어야 지배계급이 상존하는데 늘 이동하는 유목은 그러한 계급 분화에 악영향을 준다. 계급 분화에 따른 발전모델을 유일한 것으로 우리가 고집하지 않는다면 유목사회에서 비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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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공원국 작가가 키르기스의 파미르 고원에 있는 여름 목장(하영지)에서 현지에서 사귄 친구 가족과 포즈를 취했다. 공 작가는 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소득을 주기 위해 ‘파미르 생태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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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사회가 인류의 ‘오래된 미래’라는 건가.
“그렇다. 유목사회의 가치는 오래됐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다. 지금 세상이 어떤가. 지식은 계속 쌓이고 있지만 뾰족한 탈출구는 없고, 날로 심해지는 불평등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해법도 없잖은가. 우리가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자면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목문화를 접목시켜 정주문화와 융합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넓은 벌판을 다니다보면 시적 감수성이 들면서 못할 짓과 해야 할 짓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공원국은 요즘 사리모골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사리모골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인 1990년대 초만 해도 150여 가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6천명에 이른다. 인구가 늘어 초지는 좁아졌으나 달리 소득원이 없다. 게다가 인근 초원에 석탄광산이 생겨 물과 공기오염이 심각하다. 일단 상수도를 만들어 석탄광산 위쪽의 맑은 물을 끌어올 계획이다. 넓은 초원에 초보용 승마장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해 마을의 소득을 창출하려고 한다. 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청정 에너지도 공급할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해 올해 받은 인세와 새 책 계약금을 다 내놓았다. 그의 정성에 출판사들도 후원금을 보탰다. 그래도 1차 목표액(2억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돈과 엔지니어를 구하기 위해 요즈음 딸기코가 되도록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파미르 생태마을을 구상했나.
“지난 4월 사리모골에 처음 갔을 때부터 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관찰자가 직접 후원 프로젝트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가 지난 8월
계곡 급류에 빠져서 죽을 뻔(8월25일치 연재)한 뒤에 결심을 굳혔다. 사람의 삶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나 싶더라. 또 마을 사람들과 신뢰가 쌓이면서 현지의 젊은 청년들과 대화해 보니 그들도 마을을 바꿔보자는 욕구가 강하더라. 그래서 의기투합했다.”
인류학 연구에는 가이드라인이 몇가지 있다. 그 중 참여관찰 때 철칙처럼 여기는 것은 대상 집단이나 사회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되 그들의 삶에 절대로 끼어들지는 말라는 불개입 원칙이다. 공원국은 그런 금기를 뛰어넘었다.
-가이드라인은 어떻게 되나.
“참여관찰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본다. 오래 전에 확립된 인류학적 방법론도 바뀔 때도 됐고. 제 방식대로 현지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게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또, 저는 학교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서 논문을 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논문은 논문이고 일은 일이다. 논문 이전에 자기 만족도 필요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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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 작가가 지난 4월부터 7개월간 생활한 키르기스의 작은 마을 사리모골의 전경.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50여 가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6천명이 산다. 석탄광산이 생겨 물과 공기 오염이 심각하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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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써 보라”는 아내의 허가
논문 완성보다 남들을 돕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답게(?)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작가’로 규정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조금이라도 창조하는 느낌의 직업이 작가 만한 게 없다”며 “저술가가 천직”이라고 했다. 뒤늦게 인류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였다. 문헌과 이론을 주로 다루는 역사학과 사회과학으로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교수직 제의가 들어오면 어떡할 건가.
“오라고 할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앞으로 책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중요하다. 학교로 가면 책을 그만큼 쓸 수 있을까 의문이다. 제가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것은 책을 쓰려면 논문 교육을 한번 더 하고 싶고, 중국어 작문도 마스터하려는 생각에서였지 자리 때문은 아니었다.”
경북 안동 출신의 공원국은 역사를 전공하기 위해 1994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뒤 기업에 취직해 학비를 벌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학계를 지키는 역사학자는 그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일단 사업(등산장비 판매)에 나섰다. 그러나 돈 계산에 밝지 않아 이내 망했다. 그때서야 그는 아내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놨다. 글쓰기였다. 아내는 그에게 10년의 기회를 줬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으로서 작가의 길에 선뜻 나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학문을 하는 것도 별로 맞지 않는 것 같고, 사업은 더더구나 소질이 없는 것으로 판정났지만 쓰는 건 평생 할 자신이 있었다. 마침 아내가 취업해서 말을 꺼냈더니 10년 동안은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더라. 지금도 아내에게 고맙다.”
-첫번째 책은 뭔가?
“2008년에 쓴 <귀곡자>다. 전국시대의 고전인데 원문 번역도 하고 현대적 해석도 하고 싶어서 택했다.”
-그동안 역사서 등 주로 사실을 다루는 글을 써왔는데 이번엔 소설(<가문비탁자>)을 썼다. 의외다.
“형식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제가 보고 듣고 겪은 실화다. 솔직히 저는 글의 장르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에도 하고 싶은 내용을 담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앞으로도 담는 그릇은 계속 바뀔 것이다. 아마 시도 쓸지 모른다(웃음).”
<가문비 탁자>(나비클럽)는 티베트와 중국 대륙이 만나는 가상의 한 도시(강녕)를 덮친 대지진이 모티브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탐욕과 부패가 어떻게 처참한 붕괴로 이어지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 속에서도 부숴지지 않은 가문비 탁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사랑과 양심을 희망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보고 쓴 거라고?
“그렇다. 쓰촨성 대지진 때 마침 신장 위구르 지역에 있다가 현장으로 가서 한 달간 취재를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도시는 실재하는 마을인데 이름을 쓰면 다른 피해가 있을까봐 가명으로 했다. 이리저리 구상만 하고 있다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이건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다른 저술을 미룬 채 썼다.”
-왜 반드시 쓰려고 했나.
“중국이 가는 방향을 보면 한국도 비슷하다. 이렇게 가면 우리 사회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 나의 분신 같은 작품을 하나 만들어 놓고 싶었다.”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쓰기는 어땠나.
“소설은 정말 힘들더라. 잠을 거의 못 잤다. 설핏 잠이 들면 꿈에 캐릭터들이 계속 등장했다. 캐릭터들이 왜 내가 죽어야 하느냐고 묻고 나는 거기에 대답했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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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간다워지는 지름길이다. 소설을 읽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 기술을 배울 수 있나.” 소설 <가문비 탁자>를 최근 펴낸 공원국 작가가 지난 13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앞서 신문사 옥상에서 얘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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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 작가가 지난 7개월간 머물렀던 키르기스의 사리모골 민박집. 다양한 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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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간다워지는 지름길”
-작가로서 하고픈 말은?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한 강연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필수라고 생각하는 소설 13권을 제시하면서 물어봤더니 읽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 충격받았다. 소설을 안 읽으면 이 사람들은 대체 연애기술을 어디서 배우며, 대화는 뭘로 하나 걱정이 되더라. 저는 소설에서 배워서 연애에 성공했다.(대학 때 중국 여행갔다가 푸단대 교정에서 현재의 중국인 아내를 만남) 소설은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작가 공원국의 뿌리라면, 글 생산자로서의 실질적인 무기는 언어다. 그는 중국어와 영어 뿐 아니라 한문에도 능통하다. 여기에 일찍부터 러시아어도 익혔다. 유라시아를 깊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어가 필수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번에 중앙아시아 연구를 하면서는 투르크어도 배워 키르기스와 카자흐, 타지크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앞으로 계획이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나.
“터키와 이집트까지 포함하는, 유목과 정주를 통합한 인류사를 다루고 싶다. 그렇게 접근한 세계사는 아직 없다. 언어적 장벽은 없으니 준비는 어느 정도 마친 것 같다.”
역사학에 인류학까지 장착하고 지구를 안방처럼 누비는 작가가 내놓을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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