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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2 13:48 수정 : 2019.10.12 13:52

[토요판] 인터뷰
평화 신념 병역거부자 홍정훈

감옥행 각오로 병역거부하고
헌법소원 내 위헌결정 받아냈지만
진정한 양심 부족하다며 2심 실형

헌재 이어 대법원 판례 변경으로
병역 대체복무제 길 열렸으나
‘진정한 양심’이란 새 잣대 탓
여전히 ‘양심 시험’ 고통당해

‘진정한 양심이란 뭔가요?’ 평화 신념을 인정받지 못하고 지난달 말 2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건물 옥상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터뷰 내내 그는 말을 조곤조곤히 했다. 화가 날 법한 대목에서도 홍정훈(29·참여연대 사회복지위 간사)의 목소리 톤은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흥분하거나 열변을 토하지 않았으며, 웃을 때도 작은 소리로 “호호” 했다.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조용한 사람을 만난 건 오랜만이었다.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결정을 끌어낸 당사자인데 정작 본인의 재판에서는 패소했다.

“실망스럽고 죄송스럽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 분들이 많을 텐데 사법부를 설득하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2016년 12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군 입대를 거부한 홍정훈은 1심 패소(2017년 4월) 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앞서 두차례(2004년, 2011년)나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도 지난해 11월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존의 유죄 판례를 15년 만에 무죄로 변경했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4-2부(재판장 홍진표)는 홍정훈에 대한 2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신념이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서 피고인의 삶 전반에 절대적인 준칙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1심대로 유죄(징역 1년6개월 형)를 선고했다.

돌잔치 때부터 행동이 남달랐어야 하나

―헌재 결정과 대법원의 판례 변경이 있었던 터라 무죄가 예상되기도 했는데.

“헌재 결정이 난 이후에 2심이 시작됐는데 첫 재판에서 재판장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가 군대에 대한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자기가 해봐서 아는데 군대 가서도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 뒤 법원 인사로 판사가 교체됐고, 한 분이 여성이어서 권위주의적인 남성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2심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법리를 대법원의 새 판례(2016도10912)에서 가져왔다.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새 판례에 따라 병역거부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진정한 양심’이란 개념을 내세운 것이다. 대법원은 ‘진정한 양심’에 대해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신념이 깊다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내면 깊이 자리잡은 것으로서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하고,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은 그것이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하며, “신념이 진실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실제 종교적 신념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위헌 결정 이후에도 유죄를 받고 있는데, 이들의 경우 법원이 내세운 ‘진정한 양심’이라는 기준을 통과할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아마 힘들 것이다. 나는 병역거부를 선언할 당시만 해도 헌재에서 전향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다. 즉, 병역거부는 감옥행을 감수하면서 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체로 어느 정도 평화주의 양심을 증명할 수 있지 않으냐는 게 우리 쪽 주장이었는데, 재판부는 법정에서 한 수많은 증언과 내 발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정한 양심’을 증명할 수가 있기는 하나?

“칼로 마음을 도려서 보여줄 수도 없는데 그게 애초 가능하지 않다. 평화운동 하는 분들은 우스갯소리로 저런 판단기준을 통과하려면 돌잔치 때부터 피스(평화) 마크를 집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뒤에 저랑 같은 시기에 같은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분도 검찰로부터 교리 심문을 집요하게 받는 등 ‘진정한 양심’에 대한 테스트를 계속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였는지 이 운동을 오래 해온 사람들은 헌재 결정이 나온 뒤에 오히려 지옥을 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기 양심을 까보여야 하는 지옥 말이다.”

홍정훈은 어렸을 때 또래들과 달리 폭력적인 게임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전공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2학년 때 관뒀다. 이후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홍정훈 병역거부 소견서) 된 뒤 한 예술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대학은 선배가 새벽에 후배들을 집합시키는 등 군대식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학생운동은커녕 사회운동을 전혀 몰랐던 그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참여연대의 활동가 모집 광고를 보고는 음악보다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 게 더 가치 있을 거라고 판단해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다.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2심 재판부에서는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것과 반전 평화주의는 다르다고 판단했더라.

“그렇다. 재판부는 내가 반전이나 평화주의 가치보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더 큰 거 아니냐면서 평화주의 신념을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런데 군대라는 조직이나 공간을 상정했을 때 어떻게 그 두 개가 분리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병역 연기한 거나 산업기능요원으로 입대를 한때 고민했던 것을 들어서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아니지 않으냐고 지적한 대목도 판결문에 있다.

“군대라는 공간에 있는 내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안 돼서 당연히 조금이라도 군대 냄새 덜 나는 복무를 생각했다. 또 결과적으로 그것도 포기했던 것 아니냐. 그러한 고민의 과정을 어떻게 평화주의 신념이 약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는지 모르겠다. 또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은 군대에 가서 (평화주의라는) 자기 정체성을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갔다 와서 자기 내면이 파괴된 모습을 보고 예비군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니냐. 법원 판결대로라면 그런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은 절대로 저 잣대를 통과할 수 없다.”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오른쪽 둘째)가 2016년 12월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 선언을 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월간 참여사회> 누리집

공군 모집이 처음으로 미달한 까닭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남은 것 같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바늘구멍을 통과하더라도 국방부가 설계한 대체복무제라는 새로운 감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법안대로라면 현역의 두 배 기간 동안을 실제로 감옥에서 근무해야 한다. 비극이 첩첩산중이다.” 지난해 국방부가 마련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간은 36개월(2021년부터 18개월로 단축되는 현역의 2배)이며,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 근무를 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문제는 없을까? “국회에서 며칠 전에 열린 대체복무제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인데, 공군이 사상 처음 이번에 모집인원에 미달했다고 하더라. 자유로운 병영 분위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던 공군 지원병이 미달한 주요 이유는 육군보다 불과 3개월이 더 많은 복무기간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처럼 몇 개월도 크게 받아들이는 상황인데 두 배로 설계된 대체복무제를 누가 거짓으로 신청하겠나 싶다.” 그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얼마 전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고픈 말을 묻자 “지난해 헌재 결정으로 한국 사회가 변곡점을 맞아서 급격하게 변화할 거라는 기대는 틀렸던 것 같다. 갈 길이 아직 멀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양심 지키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대체복무제 외국에선

군 복무와 기간 같거나 1.5배 이내가 다수

1776년 세계 최초 미 병역거부자
군사우편 발송 등 대체복무
1917년 덴마크 최초 관련법 제정
한국 OECD 유일 대체복무 없는 나라

대체복무제 없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올해 말까지 관련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 국방부가 지난해 말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해 입법을 위한 공청회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내후년 육군 병사 군복무 기간(18개월)의 2배인 36개월이라는 긴 복무기간, 교정시설(교도소)에서의 합숙 근무라는 복무 방법 때문에 대체복무가 징벌적이고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체복무제는 17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세계 최초로 시행됐다. 평화주의자인 퀘이커교도가 세운 펜실베이니아주는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군사우편 발송 등의 비전투적인 업무로 대체복무를 하도록 했다.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대체복무제가 제도적으로 안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북유럽에서다. 1800년대 초부터 퀘이커교도의 병역거부로 사회적 논란을 빚은 노르웨이는 1902년 육군참모총장이 병역거부자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이어 1922년 의회에서 ‘진지한 종교적 확신이나 다른 진지한 양심의 기반들’에 기초한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대체복무법을 제정했다. 이보다 앞서 덴마크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대체복무제법을 제정해 실시했다. 그다음 스웨덴(1921년), 핀란드(1931년) 등이 뒤따랐다.

이후 독일(1949년), 프랑스(1963년) 등 중유럽의 큰 나라들도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법으로 인정했으며,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1993년), 우크라이나(1996년), 아르메니아(2004년) 등 동유럽 국가들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2000년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시행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체복무제가 아직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체복무 기간은 군복무 기간과 같은 나라도 많으며, 많아도 대부분 1.5배를 넘지 않는다. 대만, 덴마크, 스웨덴 등은 대체복무와 군복무 기간이 동일하다. 독일(2011년 징병제 폐지)의 경우 서독 시절 병역거부자들의 ‘진정성’을 시험하기 위해 군복무는 15개월, 대체복무는 20개월로 차등을 뒀으나, 그 후 9개월씩으로 동일하게 적용했었다.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대표적인 1.5배 이하의 나라들이다.

러시아(12개월 대 21개월)와 아르메니아(24개월 대 42개월), 프랑스(12개월 대 24개월·2001년 징병제 폐지) 등 일부 나라에서 ‘행위에 의한 증명’(진정성 시험)을 들어 2배에 가까운 대체복무 기간을 정하고 있으나,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1999년 프랑스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며 대체복무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러시아 등에도 2003년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국가인권위원회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체복무제 도입방안 실태 조사’·2018년)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국가인권위 주최)에서 군복무의 2배인 대체복무 기간과 관련해 “정당한 병역거부자에게는 징벌이 되고 부당한 차별이 된다”고 지적했다. 교도소 합숙에 대해서도 “교정시설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 형사처벌이 집행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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