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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0 09:06 수정 : 2019.11.11 00:18

이용호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는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서 있다. 그는 여의도 정치를 경험하며 엄마들, 청년들 같은 당사자들이 의원이 되는 당사자 정치가 더욱 절실해졌다고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의원 보좌관 된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

아동 문제 “국회의 사각지대”
이익단체 파괴력 경험할수록
당사자 정치는 더욱 절실해져
젊은이들 국회의원 돼야 변화

이용호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는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서 있다. 그는 여의도 정치를 경험하며 엄마들, 청년들 같은 당사자들이 의원이 되는 당사자 정치가 더욱 절실해졌다고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토교통부 업무와 관련해 제보할 게 있다는 국회 보좌진을 소개받았다. 이용호 의원실의 조성실 비서관이라고 했다.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조성실! 지난해 가을,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해 보육의 공공성을 환기했던 그가 이젠 국회 안으로 들어와 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여의도 경험’이 궁금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의원실 비서관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친정이 (이용호 의원 지역구인) 전북 남원이에요. 대학교 때 지역에서 농어촌 교육봉사를 하기도 했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보며 지역에서 추천하신 분도 있었다고 들었고요. 작년 9월쯤 이용호 의원을 직접 뵈었어요. 의원님은 ‘의원실로 오게 되면 직장에 소속되는 건데 꼼꼼히 생각해보고 최종적으로 답을 달라’고 하시더군요. 유치원 사태가 마무리된 뒤 정치하는엄마들 운영위에서 논의하니 대다수 회원들이 ‘누군가 국회에 들어가서 일하면 좋은 일’이라며 응원을 많이 해줬죠. 올해 1월부터 출근했습니다.”

국회 새내기인 그는 올해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치렀다. 국회가 행정부 업무를 점검하는 국감은 의원실엔 명절과 다름없는 대목이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그림자처럼 일하며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다. 조 비서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안전·위생 정책을 테마로 잡아 △15년 동안 시트를 한 번도 교체하지 않은 무궁화 열차 위생 문제를 처음으로 지적하고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 확보를 위한 2점식·3점식 안전띠 인체모형 실험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해 보였다고 한다.

“국감에서 에이(A)를 지적했는데 바로 시정이 안 돼 다음 국감에서 다시 지적하면 언론이나 의원실에서는 ‘같은 얘기 또 하네’ 이렇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실제로 바뀌었느냐보다 새로운 아이템이 소비되는 메커니즘이죠.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시 국회로 돌아와 입법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요. 의원실마다 국감 실적이라고 내세우는데 실제로 그만큼 변화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하면서 교류하게 된 한 기자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하며 “활동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더니 “틈만큼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지고 좀 더 국회를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틈만큼이라도”라는 여섯 글자가 그의 가슴에 콕 박혔다. 그날 바로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그렇게 바꾸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국회 사각지대’인 어린이 안전 문제에 주력

―여의도 바깥에서 정치권을 압박하다가 안으로 들어와 직접 경험한 여의도 정치는 좀 다르게 느껴지던가요?

“마비된 국회를 민낯 그대로 매일 보니까 없던 정치혐오가 생기더라고요. 물리적으론 국회 문이 열려있지만, 이상하게 국회 담장만 넘어오면 모든 게 얼어버리는 것 같아요. 얼음왕국의 엘사가 모든 걸 얼려버리는 것처럼, 저도 같이 박제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요. 특히 상반기는 그야말로 최악의 국회였잖아요.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유명한 정치인이 아니라 당사자인 나 자신이란 사실이 더 절실해졌어요. 이 무기력을 이길 수 있는 건 당사자의 절박함 밖에 없다는 생각이요.”

그는 ‘당사자 정치’를 강조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온갖 부정을 저지르던 사립유치원의 폐해를 바로잡겠다고 궐기했던 엄마들의 행동도 ‘당사자 정치’였다. 국회의원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역구민의 통렬한 지적도 ‘당사자 정치’의 힘을 갖는다.

“의원실로 전화가 많이 오는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주시는 분이 있어요. 지역의 당사자, 유권자가 맞는 말씀, ‘뼈 때리는’ 지적을 하고 1주일 뒤 다시 전화해서 ‘어떻게 돼가고 있냐’고 하시면 우선적으로 챙기게 되더라고요. 작년 유치원 사태 때도 박용진 의원실에서도 기여하고 언론에서 힘을 모아주셨지만 당사자가 (유치원법 개정에 소극적인) 지역구 의원실에 전화해서 다음 평가(선거) 때 반영하겠다고 했던 게 가장 큰 압박이었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에서 국회의원실 보좌진으로의 변신.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올해 상반기에는 정책 사안을 연구하느라, 하반기에는 국감 때문에 수시로 야근과 주말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7살·4살 두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할 때는 품앗이로 공동육아를 했어요. 주 1~2회 선생님을 했고 3~4일은 활동가로 살았습니다. 지금 의원실이 상대적으로 양육 친화적인 곳이지만 다른 직원들과 형평성도 생각하게 돼요. 취업모부들이 느끼는 역설이기도 하죠.”

―남편은 본인의 활동을 많이 지지해주고 있나요?

“남편이 공부를 오래 했는데 그때는 제가 육아를 주로 맡아서 했어요. 남편은 ‘내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언제든지 역할을 하겠다’며 격려했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할 때부터 또 다른 ‘정치하는 엄마’ 역할을 했고 지금은 제가 빠뜨리는 단체 기사도 보내주고 그래요.”

두 아이의 엄마인 조 비서관은 국회에서 아동 안전 문제에 특히 주력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통학안전·인권 등의 아동 문제는 “국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예 없거나 작다 보니 정부도 무관심하고 이익단체의 반격은 드세기만 하다.

“아동 문제는 통계청·오이시디(OECD)의 자살률·학습량 통계가 나오거나 아이들이 사망하기 전에는 관심을 받지 못해요. 사고 가능성을 종합해서 행정을 해야 하는데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언론의 조명을 받아야 부처에서 대응하죠. 사고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저에게 부처 관계자가 ‘그걸로 애들 안 죽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어린이들이 타는 승합차에 3점식 안전벨트를 설치하는 법안을 내고 <문화방송> ‘법이 없다’ 코너에서 이를 다뤘더니 의원실에 여러 연합회에서 항의전화가 쇄도했어요. ‘그런 거 무력화하려고 우리가 몇년을 노력했는데 왜 갑자기 또 이러느냐’고요. 안전벨트 비용 부담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힘의 불균형이 커요. 그래서 ‘이렇게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 주시면 우리도 언론에 알릴 수밖에 없다’고도 했죠.”

현장에서 이익단체의 파괴력을 경험할수록 ‘당사자 정치’는 더욱 절실해진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하면서 종종 들었던 칭찬이 뭔 줄 아세요? ‘보통 엄마가 아니네’였어요. 그런데 그냥 ‘엄마’여서 잘 아는 거예요. 남다르거나 유능해서가 아니고요. 저출생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국회 포럼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갔더니 어떤 의원을 다둥이 아빠라고 소개하더라고요. 그런데 전 그 다둥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다둥이 아빠가 국회의원이 된 적은 있지만, 의원은 물론이고 아이 두 명 있는 여성 보좌진도 찾기 어려운 걸요. 보통 사람의 정치는 ‘보통 사람’이 가장 잘 대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속으면서도 ‘엘리트’에게 좋은 정치를 기대해요. 제아무리 고학력이면 뭘해요. 딱 자기 전문 분야만 좀 더 알 뿐이죠. 저출생 문제를 전문가들만 모여서 논의하면 해결이 되나요. 당사자들에게 발언하고 의사 결정할 권한을 줘야죠. 들러리 말고요.”

20~40대의 시대정신 느끼는 의원 필요해

그렇다면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당사자 정치’를 실현하기에 조 비서관이 적임자 아닐까. 그는 “기회가 오면 당연히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제 꿈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의원직은 정치의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란 의미다.

“진짜 꿈은 어느 자리에서든 ‘정치하는 엄마’로 사는 거예요. 의원실에 들어온 내게 누군가 ‘꿈에 더 가까워졌다’고 하던데 그 표현이 불편했어요. 국회 밖에서도 이미 ‘정치하는 엄마’로 살아왔거든요. 국회의원은 개인적인 삶의 여유를 다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사실상 국회의원 타이틀과 ‘엄마’로서의 시간을 맞바꿔야 하죠. 공동 육아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저로서는, 가까운 사람이 의원이 돼도 ‘어려운 길 간다’는 생각을 먼저 할 것 같아요. 의원이 되는 걸 신나고 성공하는 길로만 인식하는 이에게 정치를 맡기고 싶지도 않고요.”

―가까이서 본 국회의원의 업무가 힘든 일로 느껴지던가요?

“한없이 좋고 편하려면 편할 수 있고 어려우려면 어려운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현장과 맞닿아있으면 괴롭지 않을 수 없거든요.”

지난달 21일 정치하는엄마들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동 생명안전 관련법 처리를 촉구했다. 해인이, 한음이, 하준이, 태호·유찬이, 민식이 등 제동장치가 풀린 차량에 부딪히거나 과속하는 스포츠클럽 차량 사고로 변을 당한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다. 조 비서관은 “어떤 경우에는 유가족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의원실에서 아이들 이름을 달아 법안을 발의해버리기도 한다”며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계류돼 있는 한 부모는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아이들 부모,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299명 의원실을 전부 돌아다녔고 “의원님께 보고하고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본회의 상정 서명을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국회의 비생산성을 목격하며 타성에 젖지 말자고 다짐한다.

“다음 총선 포기 선언하는 몇몇 의원들이 ‘좀비가 되는 기분이었다’고 했잖아요. 저도 주변 분에게 ‘절대 타성에 젖으면 안 되겠다’고 말했어요.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합니다. 정당들은 <82년생 김지영> 단체 시사하기 전에 82년생 김지영들에게 공천을 주면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룹으로 들어와 일하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왜 젊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해야 하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일이에요. 국토위 보좌진들 사이에서 ‘그분이 돈이 많은 게 아니다, 성실한 재테크를 하셨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게 왜 부자가 아니죠. 제 주변에 20억 갖고 있는 사람 없는데요. 저만 이상한가요?’라고 했어요. 저는 몇년은 더 돈을 갚고 평생 노예처럼 일해야 작은 집 하나 살 거 같은데, 국회에 있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돈이 많죠? 시대별로 중요한 담론이라는 게 있고 그걸 시대정신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20~40대의 시대정신을 몸으로 느끼는 의원이 없는 것 같아요. 저출생이 문제라고 하는데 실효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감각적으로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죠.”

그는 국회 내부의 기득권과 위계질서가 대표적인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300명이 대표성을 가지고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하는데 ‘다선 먼저, 나이 먼저’ 이런 식으로 안에서 위계를 만드는 게 이상해요. 지금은 ‘두 마디 이상은 싫소’ ‘꼰대는 사절’ 이런 시대입니다. 제가 86년생인데, 저도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어요. 그런데 60대와의 간격은 너무 멀잖아요. 다선이 될수록 직업으로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고인 물이 되면…어려워요. 현실에 분통 터지는 사람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항의전화를 건 지역구 민원인을 설득했고 “얼굴 한 번 안 봤지만 나중에 혹시 정치하게 되면 후원하겠다“고 했다는 민원인의 말을 전했다. “정치는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로 통하고 존중받는 걸 느낄 때 마음은 움직인다고 봐요. 옳은 콘텐츠를 갖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압박할 수 있는 게 정치력이죠. 서로 마음을 움직이면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20대 국회가 남은 기간에라도 그런 정치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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