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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5 08:54 수정 : 2019.12.15 08:58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자신의 책 <사는 게 쉽다면 아무도 꿈꾸지 않았을 거야>를 들고 포즈를 취한 다인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지구인 200명의 꿈을 인터뷰한 다인씨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자신의 책 <사는 게 쉽다면 아무도 꿈꾸지 않았을 거야>를 들고 포즈를 취한 다인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외롭고 심심해서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할 말도 없었다. 꿈이란 도대체 뭐냐고 묻자 엄마는 불쑥 1년쯤 아무 데나 여행을 가자고 했다. 5년 전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다인씨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25개국을 돌며 낯선 이들의 꿈을 인터뷰했고, 그림을 그렸고, 이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열여섯살의 눈에 비친 세계인의 꿈은 낭만적이기도 하고, 때론 막막하거나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이 꿈들에서 공통점을 느꼈다.

낯선 이방인 소녀가 쭈뼛쭈뼛 다가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열여섯살 때 꿈은 무엇이었느냐고, 그리고 지금은 어떤 꿈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에게 되물을 수도 있겠다. 그걸 왜 묻느냐고.

열여섯살 다인(필명)은 그렇게 묻고 다녔다. 1년여 동안 25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호스텔 카운터 직원 오빠에게, 공원에 산책 나온 할머니들에게,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에게, 사막에 사는 원주민 언니에게 물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는커녕 꿈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때였다. 이런 질문을 품고 2014년 8월 말부터 다음해 12월 초까지 세계를 떠돌며 ‘지구인 200명’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녹음기에 차곡차곡 담은 그들의 꿈과, 꿈의 의미를 담은 책 <사는 게 쉽다면 아무도 꿈꾸지 않았을 거야>(마음의숲)를 최근 펴냈다.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다인(21·대학생)씨를 만나 “그래서,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꿈을 인터뷰하러 여행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랑 타이(태국) 치앙마이에 살며 중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에서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고,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좀 지치기도 하더라고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질문을 받으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한 번은 깊게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한테 물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열여섯살이었는데, 여행 계획은 어떻게 짰나요?

“정해진 계획 없이 다녔어요.(웃음) 일단 러시아로 출발했어요. 그때부터 도착한 곳마다 인포메이션센터부터 들러 지도를 받고, 게스트하우스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어디 가면 좋냐고 물어보면서 다녔어요. 꿈을 찾으러 간 거였고 1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한곳에 며칠 머무르면서 현지인들이 어떤 꿈을 꾸면서 사는지 볼 수 있는 소도시나 시골, 사막 등을 찾아다녔어요. 관광지는 복잡하고 바쁜 사람이 많아서 인터뷰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여행은 모험이다. 그 역시 첫 나라인 러시아의 입국장에서부터 좌충우돌했다.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는데 미성년자 보호자로 동행한 엄마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점심은 마트에서 산 바게트로, 저녁은 숙소에서 해 먹는 걸로 해결했다. “여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가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처음엔 무서웠어요.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낯선 이한테 말을 거는 게 더 무서웠을 것 같은데요.

“네.(웃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고는 해도, 모르는 사람한테 인터뷰를 부탁하는 게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두려웠어요. 과연 인터뷰에 응해줄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고, 시간을 빼앗는 피해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한 뒤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꿈을 생각하게 해줘서, 희망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내가 이분들에게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했고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네요.

“그렇죠. 낯선 애가 갑자기 자기 삶을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는 거니까 난감해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금 생각하다가 인생 스토리를 풀어놓으면서, 살아가다 보니 꿈은 이런 것이더라고 얘기해주었어요. 자기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꿈을 갖고만 있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질문을 받고는 ‘내 꿈은 뭘까’ 곰곰이 생각하고, 꿈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행복해 보였어요. 누군가 자신의 꿈을 물어봐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터뷰한 이들이 뭐라고 말했기에? 그의 책에서 이들의 꿈을 엿보았다. 라트비아 리가의 호스텔에서 만난 예순세살 애나 할머니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30년 동안 교도관으로 일하다 은퇴한 뒤 꿈을 이루는 중이었다. ‘매해 비행기 없이 여행하기’다. 무뚝뚝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인은 “동화책 속 모험가처럼 할머니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 걸 보았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로 향하는 시내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마흔다섯살 레이첼 아저씨는 비보이가 꿈이라고 했다. 순간 그의 불룩 나온 배를 보고 놀라는 다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꿈이라는 게 꼭 이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도 꿈이야. 꿈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인생은 시도와 좌절의 연속이라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한 호텔 카운터 직원인 리차드 아저씨는 파라과이에서 심리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가족들과 이곳에 왔다. “많은 꿈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단다”라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다인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했다. 중국 다리에서 만난 서른두살 문 오빠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꿈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만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게 꿈이 됐고, 엔지니어가 되어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허무해졌어. 진짜 꿈이 아니었던 걸 깨달았다”고 했다.

프랑스 아비뇽 거리를 활보하던 10대 또래들과는 지금도 에스엔에스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좋아하는 영국 팝 밴드 ‘원디렉션’의 포스터를 들고 프리허그를 하던 소녀들은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게 내 꿈이 되는 거야”라고 말했고, 다인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뽑아봐야겠다. 그 속에 틀림없이 내 꿈이 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했다.

다인씨가 프랑스 아비뇽에서 프리허그를 하고 있던 또래 여행객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인씨 제공

―꿈이 없다거나 다인씨처럼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네. 모로코에서 만난 서른살 미구엘 오빠는 자기는 인터뷰 대상이 못 된다고 했어요. 꿈도 못 이뤘고, 갖고 있지도 않다면서요. 변호사가 되려고 준비 중인데 잘 안 되고 있고, 그게 꿈인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계속 물어보면서 같이 생각해보자고 했어요.”

―25개 나라를 갔는데,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나요?

“남미에서는 제가 스페인어를 몰라서 질문지를 만들어서 보여줬어요. 보디랭귀지도 하면서요.(웃음) 주변에 있던 분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도와주기도 했고요. 전부 녹음을 했는데, 러시아 할머니들한테는 번역기를 돌려서 질문을 했고 답은 알아듣지 못해 나중에 녹음을 풀면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알게 됐죠.”

―다인씨의 질문을 그대로 드릴게요. 꿈이란 무엇인가요?

“딱 정해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복과 희망을 느끼는 것이요.”

멕시코 오악사카의 한 호스텔에서 일본인 마쓰다 언니를 인터뷰한 뒤 다인씨가 그린 그림. ‘정해진 대학’을 거부하고 여행 중이라는 마쓰다 언니는 10년 뒤 꿈이 ‘여행하는 카페’라고 했다. 다인씨 제공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권했다. 2년 늦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태국 중학교에서는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해서 저는 구구단도 잘 못 외웠어요.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고려와 조선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역사도 잘 몰랐고요. 게다가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내가 무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본 교육을 받기 위해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나요?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제가 그런 경험을 하고 왔으니까 친구들한테도 꿈에 대해 많이 물어봤어요. 그런데 입시가 걸려 있잖아요…. 꿈이라기보다는, 어떤 걸 하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더라고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그냥, 뭐랄까, 방황했어요. 꿈도 아예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공부하라는데 하기 싫고, 대학 가야 하는데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고, 쉬고 싶고, 학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하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 거네요.

“저희한테는 꿈이라는 말이 의례적인 말 같아요. 꿈을 물으면 오히려 중압감을 느껴요. ‘너 커서 어느 대학 갈래? 직업은 뭐로 할래?’라고 묻는 것 같아요.”

―드림(꿈)이 아니라 잡(직업)을 묻는 것 같다는 거죠? 책에 “꿈을 물어보면 대체로 서양인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고, 동양인은 직업을 말하는 편이었다”고 쓰기도 했는데요.

“네. 가난한 사람들은 구체적인 직업을 얘기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고요. 그런데 친구들은 대부분 모르겠다고 하고, 학원 가서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꿈이 없이 공부하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올해 영문학과 대학생이 됐는데, 대학 친구들은 어떤가요?

“아직 1학년이라 그런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대학에 왔으니 좀 쉬어야겠다고 해요.”

―다인씨는 나름의 독특한 경험을 한 건데, 그래서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찾았나요?

“태국에 갔을 때 영어를 못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같이 밥 먹을 친구도 없어서 외로웠고요. 그때부터 그림을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했어요. 영어에 익숙해진 뒤에는 학교에서 미얀마 난민 판자촌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거기 사는 아이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어요. 구연동화를 읽어주니 너무 즐거워하더라고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동화책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터뷰 여행을 하면서 그 경험이 내 꿈의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삽화를 모두 직접 그렸는데, 미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

“그림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어요. 주변에서 오히려 배우지 말라고 해요.(웃음) 그렇지만 실력이 모자랄 수 있으니 매일 스케치를 그리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이 꿈이 된 거네요.

“네. 그리고 또 하나 있는데, 지식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식인이요? 혹시 누가 교수가 되라고 하나요?(웃음)

“하하. 제가 무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계속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공부를 멈추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게 저의 큰 꿈이에요.”

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이상한 일이다. 꿈을 이루게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최선을 말했다. 꿈을 이뤄가는 순간들을 바랐다. 행복은 꿈이 아니라, 꿈꾸는 순간들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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