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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1 10:41 수정 : 2017.12.28 15:39

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플랫폼 레볼루션> 마셜 밴 앨스타인 외 2명, 이현경 옮김/ 부키 (2017)

로마가 천년간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개방성에 있었다. 로마는 로마를 위해 땀을 흘리거나 피를 흘리면 출신지와 관계없이 로마시민이 될 수 있게 했다. 로마인은 지성에서 그리스인보다 못했고, 체력에서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 카르타고인보다 못했다. 대신에 로마는 이들을 담아내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덕분에 로마의 개방된 플랫폼 위에서 교육, 경제, 전쟁의 경쟁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김기찬 외 2명, 성안북스, 2015)

택시호출 앱도 승객과 택시를 연결해 주는 가상공간의 플랫폼이다. 연합뉴스.

올해 마지막 책갈피경제를 쓰기에 앞서 2017년을 관통하는 경제·경영의 열쇳말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새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정규직화, 소득주도 성장 같은 정책의 틀이 새로 제시됐다. ‘4차 산업혁명’은 계속 화두가 됐다. 이들을 아우르면서 경제와 사회를 바닥부터 바꾸는 변화를 찾아볼 때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플랫폼으로 ‘거대한 전환’을 하고 있다. 가상과 실재가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도 플랫폼과 밀접하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기술이 한 꼭짓점에서 만나는데, 그게 플랫폼이다. 인공지능의 ‘먹이’인 빅데이터만 해도 플랫폼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유된다. 4차 산업혁명은 달리 말해 플랫폼 혁명이다.

플랫폼은 공통되는 요소를 공유하는 수단을 말한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 생산자, 공급자 등 생태계 구성원이 모여 뛰어노는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택시를 잡을 때 쓰는 카카오티(T)나 해외의 우버, 에어비앤비처럼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플랫폼은 거래비용이 거의 없기에 생태계의 상호작용이 물리적 공간에서의 플랫폼(예를 들어 서울역의 기차 플랫폼)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성화된다. 여기서 핵심은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가 얼마나 크냐이다. 유능한 총무는 동창회에 동문이 많이 온다고 소문을 낸다. 그래야 “나도 가볼까”하는 마음이 들고 실제 모임이 북적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뭔가 이득(가치, 솔루션)을 주는 데다 재미까지 있으면 플랫폼 양쪽의 참가자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 네트워크를 누군가 선점하면 후발자는 여간해서 침투하기 어렵다. 그래서 승자독식의 시장이 플랫폼이기도 하다.

<플랫폼 레볼루션>은 플랫폼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며, 기업경영과 정부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폭넓게 풀어놓은 책이다. 미국 보스턴대 교수인 마셜 밴 앨스타인 등 3명의 저자는 ‘양면 네트워크’(two-side networks, 신문사를 예를 들면 한쪽에는 독자, 다른 쪽에는 광고주라는 두 개의 시장이 매체라는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가운데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한다는 뜻)라는 새로운 경제이론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다. 이들은 “디지털 연결성과 이를 가능케 한 플랫폼 모델이 세상을 영원히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실재 플랫폼은 미디어, 교육, 구인·구직에서 의료, 에너지, 정부 부문에 이르기까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이제는 에어비앤비에서 매일 밤 예약되는 방의 개수가 세계 최대 호텔 체인들보다 많다. 업워크는 인력을 제공하는 시장에서 클라우드에 하나의 조직을 구축하고, 원격으로 프리랜서들을 연결해 물리적인 공간 및 거기서 발생하는 비용 없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인프라로 변모하고 있다. (…)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거대기업인 노키아와 블랙베리가 지난 10년간 시장 가치의 90%를 잃는 동안, 플랫폼 거대기업인 애플과 구글이 주식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플랫폼과 함께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성을 높게 쌓고 상품의 독보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까지 경영의 원리였다. 하지만 플랫폼 경제에서는 연결과 매개를 잘하는 게 경쟁력이다. 모든 것을 다 만들 필요도 없다. 남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플랫폼 경제이다. 플랫폼 기업은 그래서 빠르게 성장하며 산업의 개념과 경계를 허문다.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5위안에 드는 애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다.

물론 전통적인 기업들도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발명왕 에디슨이 창립한 미국의 전통 제조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도 그 중 한 곳이다. 지이는 전임 이멜트 회장이 2015년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핵심사업이던 가전을 이듬해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지이가 추구하는 것은 제조업의 강점을 디지털과 접목해 산업인터넷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사가 생산한 항공기 엔진에 촘촘히 센서를 달고 여기서 생성된 데이터를 산업인터넷용 클라우드 플랫폼 프레딕스에 연결해서 분석한다. 이를 통해 항공사들에 고장 난 뒤 고쳐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엔진의 상태를 미리 알고 손을 써 주는 사전 서비스를 해 수익을 늘려가고 있다. 지이는 이런 플랫폼을 외부에도 개방해 발전용 터빈, 항공엔진, 석유 플랜트 등 핵심 제조업의 표준을 장악하고 데이터 포털이 되려 하고 있다.

저자는 “플랫폼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말은 플랫폼을 잘 활용하면 전통기업이 혁신하는 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는 혁신 지체를 겪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개념설계’ 역량이 돌파구라고 한다. 그런데 불 꺼지지 않는 사내 연구소에서 혁신이 나오리라 기대하는 경영자는 실망하게 된다. “클라우드 소싱과 플랫폼에 있는 독립적인 참여자의 아이디어를 통해 일어”나는 게 플랫폼 시대의 혁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기업의 플랫폼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가 많지만, 국제무대에 내놓을 플랫폼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플랫폼 모델은 주로 미국 기업이 선점했고, 영어가 아닌 언어상 제약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국제적인 플랫폼 기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의 알리바바나 텐센트가 세계로 뻗어가는 것을 보면 이 말도 맞지 않는 게 밝혀졌다.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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