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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2 16:23 수정 : 2017.06.13 10:16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강희철의 법조외전
“내가 잘 아는 사람” 등 ‘인사 3원칙’ 앞세워
검찰 내 대학 동기들 위주 주요 포스트 장악
8일 고위직 인사로 좌천되거나 사의 표명
박영선 의원 주장 ‘우 사단’ 리스트와도 일치
검찰 내부에선 김기동·이동열 거취에 촉각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우병우가 자기 나름 ‘인사(추천)의 3원칙’이 있다고 말하더라.”

물론 그가 대통령 민정수석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을 당시 얘기다. 우 전 수석한테 고위 공직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가 전해준 세 가지 원칙의 제1번은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충성심)’. 최고 권력자를 ‘모시는’ 민정수석으로서 당연한 얘기일 수 있겠다. 두번째로는 ‘똑똑해야 한다’, 즉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원칙으로 우 전 수석이 거론한 것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준 그 변호사는 “앞의 두 가지는 레토릭(수사) 같고, (우 전 수석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맨 마지막 세번째가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지난 8일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좌천’ 당한-이어 사직한 사람들까지 포함해-면면들엔 이 ‘3원칙’에 들어맞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검찰 내 ‘우병우 사단’ 12명과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한다.

그래서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일까. 한 검찰 인사는 “아직 아니다. 박 의원이 말한 우병우 사단 명단이 100% 맞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맞는 사람 중) 몇몇은 건재하다”고 했다.

그를 포함해 기자와 통화하거나 만난 검사들이 첫번째로 거론한 이는 김기동(53)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이다. 서울법대 83학번으로 대학으론 우 전 수석의 1년 선배이지만 사법시험 두 기수 아래(31회)인 그는 2004년 우 전 수석과 대구지검 근무 시절 교분이 깊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구지검 특수부장이 우 전 수석이었고, 김 단장은 그 아래 부부장검사로 근무했다.(우 전 수석이 당시 지휘했던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휘장비리 사건’은 그의 ‘검사 인생’을 바꿔 놓았다. 또한 이 사건은 집권 여당 정치인에겐 유리하게, 야당 정치인에겐 혹독하게 처분하는 검찰의 정치적 편파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였지만, 지방에서 벌어진 수사라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잘 처리한 뒤 우 전 수석은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영전’한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쓰려고 한다.)

김 단장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던 ‘비비케이(BBK) 사건’을 통해서다. 수사 당시 김 단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으로 참여했다. 대선 2주 전인 2007년 12월5일 검찰은 비비케이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이런 결론이 맞는지 아닌지는 논외로 한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김 부부장이 수사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첫 인사에서 김 단장 기수는 ‘지청 부장’으로 나갈 차례였다. 그래서 그의 동기들은 대부분 서울을 떠났지만, 김 단장은 있던 자리를 지켰다. 다시 1년 뒤, 그의 동기들은 지방검찰청 부장이나 충주·서산 등 작은 지청장으로 옮겼다. 그러나 김 단장은 같은 청사(서울중앙지검)에서 층만 바꿔 특수3부장으로 영전했다. 같은 해 8월 인사에서 김 단장은 모든 ‘특수통’ 검사들이 선망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됐다. 이를 두고 한 검찰 인사는 당시 기자에게 “역대에 이런 인사는 없었다. 비비케이 말고 무엇으로 이 인사를 설명하겠느냐”고 했다.

특수1부장 때 김 단장은 이른바 ‘한명숙 2차 수사’에 전격 착수한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한테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되기 직전 ‘한만호로부터 수뢰’라는 전혀 다른 첩보로 ‘별건 수사’를 개시한 것이다.(이 사건의 전말과 시비는 논외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2015년 12월 이 사건에 대해 “앞으로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며 ‘대법원의 오판’을 언급한 바 있다. (관련기사 문재인, “한명숙 사건 재심 청구할 것” )

김 단장의 승승장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김준규 총장 때인 2010년 8월 인사에서 대검찰청 ‘검찰기획단장’에 임명된다. 대다수 동기들과 달리 내리 4년째 ‘서초동’에 남은 것이다. 이 직책은 당시 신설된 것으로, 김 단장이 이 자리를 떠나 성남지청 차장으로 나간 2011년 9월 이후 폐지됐다. 오직 김 단장만이 이 명패를 새긴 셈이다. 당시 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장급 인사는 “김 단장은 당시 검사장 승진을 앞둔 연수원 18기 출신 선임연구관 세 사람의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지원 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모호하다.

김 단장이 특수1부 부부장에서 검찰기획단장을 마치기까지 기간은 임채진, 김준규 두 명의 총장 재임 기간과 겹친다. 이 시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주임검사를 맡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사망(2009년 5월)하면서 검사 경력에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9년 8월 김준규 변호사가 검찰총장에 임명되면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김 총장이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일 때 우 전 수석은 소속 검사였고, 김 총장이 법무실장일 때는 직속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일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김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우 전 수석을 비공개 ‘비전(vision) 팀장’에 임명해 조력을 받았다. 김 총장의 취임사도 우 전 수석이 썼다. 김 총장이 취임한 뒤 첫 인사에서 우 전 수석은 대검의 요직인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검찰 내 여러 요직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검찰 내 정설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제통’ 출신으로 일선 수사 검사들을 잘 모르는 김 총장이 우 전 수석을 곁에 두고 많은 부분 조언을 들었다. 우 전 수석도 인사에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적극 천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사례가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다. 우 전 수석과 서울법대 동기(84학번)인 그의 전공은 애초 ‘마약’이었는데, 2010년 갈래가 다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에 임명된다. 이 관계자는 “김 단장 인사도 우 전 수석이 챙기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김준규 총장이 2011년 7월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중도 하차하자, 우 전 수석의 경력도 하강곡선을 그렸고, 결국 검찰을 떠나게 된다. 그 사이 김 단장은 성남 차장, 대구 2차장, 부산동부지청장을 거쳐 고양지청장을 역임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비비케이와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김 단장은 몇몇 동기들과 달리 서초동(대검·서울중앙지검)이나 과천(법무부)과는 ‘인사 연’이 닿지 않았다. ‘검찰 인사 생태계’에서 ‘주변’에 머물렀던 셈이다.

2014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현판식이 끝난 뒤 김기동 단장(오른쪽)이 김진태 검찰총장 등을 사무실로 안내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러던 2014년 5월, 우 전 수석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자 김 단장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에 임명돼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이어 우 비서관이 민정수석으로 영전할 무렵인 2015년 2월 인사에서 검사장(대전고검 차장) 으로 승진한 김 단장은 다시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대검에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신설(1월)되자 단장에 임명됐다.(김 단장의 원 소속은 지금도 대전고검이다.) 그 배경을 두고는 “우 전 수석의 작품일 것”이라는 쪽으로 검찰내 의견이 모아진다.

이 특별수사단은 2개 팀(팀장이 2명)에, 상시 배치돼 있는 수사 검사만 11명이나 되는 총장 직할 수사 부서로 사실상 상설 기구다. 검찰 안에서 “예전 대검 중수부보다 규모가 더 크다. 김 단장이 과거 중수부장인 셈”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과거 대검 중수부는 3과까지 있을 때에도 평상시 정원이 각 과당 과장(검사) 1명에 연구관 1명씩, 모두 6명이었다. 여기에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을 더해도 정원은 8명. 대형 사건이 벌어지면 검사를 파견받아 수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매머드 수사팀’이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내놓은 가시적 성과라고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비리’가 유일하다. 이 사건은 과거 김 단장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있을 때 어느 정도 인지했던 것이어서 ‘신상품’도 아니다. 게다가 검찰 내부엔 당시 특수1부가 이창하씨 비리는 물론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와 당시 ‘현직’이던 김준규 총장의 ‘특수 관계’까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 국면 전후 검찰의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이 부서가 뭔가 일을 하기엔 여건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검 관계자에게 이 팀의 ‘근황’을 물었더니 “아직도 대우조선해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김 단장이 맡았던 방산비리,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선거 직전에 만들어져서 정치적 수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고, 수사 결과 ‘권력형 비리’는 하나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박근혜 정권 실세들이 대거 참석한 청와대 ‘서별관 회의’ 결정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키웠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현재 수사 중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이 지난해 서별관 회의의 문제점을 폭로한 뒤에도 검찰은 압수수색 등 증거 확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 단장은 대통령 탄핵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기존 정권과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금 검찰 내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산 혜광고등학교-서울대 법대 1년 선배라는 사실 때문이다.

박영선 의원이 거론한 ‘우병우 사단’ 명단에서 남은 한 사람은 이동열(51)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다. 이 차장은 과거 대검 중수부 첨단범죄수사과장으로 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중수1과장으로 주임검사이던 우 전 수석을 도운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던 우 전 수석이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과 함께 범죄정보기획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자 이 차장은 그 직속인 범죄정보1담당관에 임명됐다. 그 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법무부 대변인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순천지청장으로 있던 2014년 여름 뜻밖의 ‘악재’를 만난다. 세월호 사건으로 도피 중이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관내로 숨어 들었다 나중에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문책 인사의 대상이 된 이 차장은 대전고검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으로 ‘복귀’했고, 우병우 전 수석이 영향력을 발휘한 2016년 1월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의 특수1~4부 등 인지수사 부서 전체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에 임명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월 초 롯데그룹에 대한 석연찮은 수사가 개시됐다. 나중에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일이지만, 최씨가 주도한 케이(K)스포츠 재단이 롯데에서 추가로 지원받은 70억원을 돌려주자마자 이튿날(6월10일) 이 차장 휘하 특수부가 신동빈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롯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차장은 3차장에 임명된 뒤 우 전 수석과 자주 통화한 사실이 박영수 특검의 통화내역 조회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검찰 인사 전체가 늦어지면서 나이로는 위지만 사법시험 기수로는 한 해 후배인 윤석열 지검장 아래서 근무하고 있다.

검찰 안에서는 우 전 수석의 ‘포석’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이도 있다. “우 전 수석이 사시 1년 선배인 이영렬(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좀 껄끄러워 했다. 맘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으니까. 김수남 총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그래서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을 최대한 활용한 것 같다. 김기동을 대검에, 이동열을 서울중앙에 놓고, 국회를 맡는 남부(서울남부지검)에는 김진모, 공안(대검 공안부장)에는 정점식, 이렇게 포진을 시켜서 일종의 ‘직할 체제’를 구축했던 것 아닌가. 또 국정원에도 국내 담당하는 2차장에 대학 동기 최윤수를 보내고. 돌아보면 그런 구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기사를 올리고 난 12일 오후 김기동 단장은 이런 해명을 보내왔다. “조국 민정수석은 몇 년간 만나지 않았다. 수석이 된 뒤에는 오해를 살까봐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또 우 전 수석과는 대구지검에서 7개월 같이 근무한 것 이외에 업무적 연락이나 상하 지시관계에 있었던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도 아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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