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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8 17:12 수정 : 2017.11.09 10:10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강희철의 법조외전⑩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

지난 6일 국정원 댓글수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검찰 내부에선 이틀이 지난 8일까지도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상 징후’가 없었던 데다, ‘현직 검사’인 피의자가 투신해 사망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 검찰 내부가 받는 충격은 더 커보였다. 자식 중에 고3 수험생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애잔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침통한 분위기에 겉으론 말 아끼지만

지난 주말 그와 통화했다는 한 검찰 간부는 “며칠 전에 ‘또 조사받으러 (검찰청에) 나오라고 해서 들어가는데,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걸 협조하라고 하니 참 힘들다’고 하더라.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 했다.

다른 간부들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며, 말 하기를 힘들어 했다. 7일 한 고위 간부는 기자와 통화에서 연신 한숨만 내쉬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생명이 상하면 융화가 안 된다, 봉합은 될지 몰라도”라며 장탄식을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장호중 검사장의 경우 변호를 맡은 박성재 전 고검장이 잘 설득해서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고 정리가 잘 됐는데, 변 검사는 거의 혼자서 끙끙 앓다가 저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변 검사의 사망을 두고, 검찰 내부에는 현재의 국정원 적폐청산 수사 방식을 문제 삼는 시각이 있다. 더 격앙된 이도 있고, 더 점잖은 축도 있지만 ‘평균적인 시각’은 이런 것이다.

“적폐청산 수사는 해야 하지만, 전부 검찰로 보내 휘몰아치는 분위기라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원장이 시켜서 한 일이니까 그에 맞게, 뇌물 비리 같은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변 검사가 국정원에 파견을 간 것도, 국정원에서 그런 일을 한 것도 조직의 지시에 의해 한 것 아니냐. 예를 들어 국정원 지시받고 댓글 달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몽땅 다 구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검찰 관계자 ㄱ)

적폐청산 수사방식 문제제기도

그러나 한발 더 들어가 보면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의 고민도 깊었던 것 같다. 2013년 당시 국정원에 파견 가 있던 장호중 검사장과 변창훈·이제영 검사가 국정원의 ‘범죄’에 너무 깊숙이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장 검사장 등 당시 파견 검사들이 ‘금칙’을 스스로 어겼다. 정보기관의 현안에 깊숙이 개입하거나 (범죄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금칙 말이다. 그거(댓글수사 방해)를 총지휘하다 시피 했으니…. 거기 가담한 순간, 끝난 것이다.”(검찰 관계자 ㄴ)

특히 2013년 댓글 수사 당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들고 압수수색 나간 검찰 수사팀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 문제의 ‘위장 사무실’ 건이 컸다.

“우리도 파견 검사들이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추명호 전 국장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추 전 국장에 앞서 구속된 하급자가, 추 전 국장 영장이 기각되자 작심하고는 알고 있는 걸 싹 다 불어버렸다. 위증교사는 우리도 내사를 하고 있었지만, 예전 댓글 수사팀이 압수수색 나갔을 때 위장 사무실을 차려놓고 그리로 안내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파악된 것이다. 이건 국정원 직원도 아니고 검사라는 사람들이 수사와 재판을 노골적으로 교란한 사법방해인데, ‘그래도 우리 식구니까’ 하고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느냐.”(검찰 관계자 ㄷ)

“파견 검사들 스스로 ‘금칙’ 어겼다”

검사들이 신분을 유지하면서 국정원이나 옛 안기부(옛 국가안전기획부)에 파견을 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013년과 같은 사례는 기록에도, 기억에도 없다고 한다. 원래 파견 나간 검사는 ‘섬’처럼 지내다 기한이 되면 ‘원대 복귀’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고, 국정원 쪽도 파견 검사는 ‘남의 식구’라는 의식이 강해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현안들은 ‘공유’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2005년 검찰이 ‘국정원 도청사건’을 수사하면서 내곡동 국정원 청사를 압수수색할 때의 일이다. 파견 검사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온 수사팀을 ‘안내’해서 압수수색 대상인 방 문앞까지 갔다. 그런데 거기서 차단을 당했다고 한다. 국정원 쪽이 “파견 검사도 검사이니, 수사팀 말고는 이 방 안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막아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아는 홍준표(자유한국당 대표)도 과거 안기부 파견을 갔었고, 그런 식으로 다녀온 검사들이 많다. 그런데 국정원이 하는 일이라는 게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거나,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파견 검사들은 발을 깊이 담그지 않는 것이 전통 비슷한 것이었다. 오죽 했으면 파견 검사들이 아는 건 ‘자기 방과 원장 방 말고는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검찰 관계자 ㄷ)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국정원 수사를 시작하면서 검찰은 애초 구속영장 청구 기준을 ‘1급 이상’으로 정했다고 한다. 사법적 책임은 그만큼 권한이 컸던 사람들에게 묻고, 시키는 일을 수행한 데 불과한 중·하위직들은 가급적 구속대상에 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검찰은 과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건 등에서도 비슷한 처리 기준을 적용한 바 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기준을 지키기가 어렵게 됐다. 검사들보다 먼저 구속영장이 청구되거나 발부된 국정원 직원들 중에 1급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럿 포함되면서다.

“1급 이상이라야 영장을 친다, 이 기준대로 하면 국정원에서 ‘앞에 들어간 우리 직원들은 뭐냐,’ 이런 얘기가 나올 게 뻔했다. 곧바로 ‘검사들은 지들 식구라서 영장 안 치고 봐준다’고 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남은 (국정원 관련) 수사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검찰 관계자 ㄴ)

그래도 ‘현안티에프’ 멤버 세 사람 가운데 변 검사는 “가담 정도가 제일 약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구속영장 청구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

“변 검사는 비공개 소환을 원해서 수사팀에서도 맞춰준 걸로 안다. 진술 협조를 좀 해줬으면 했는데 (잘 안 됐다). 국정원 쪽에서 이미 (1급 이하) 다수가 구속된 상황이라 수사팀도 ‘1급’이란 자체 기준은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검찰 관계자 ㄷ)

‘변 검사 사건’이 ‘출구전략’ 논의 촉발

변 검사의 죽음은 검찰 안팎에 여러 반향을 낳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수사에서 ‘타깃’이 된 공안라인이 격앙돼 술렁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한 검찰 관계자는 “공안은 이제 거의 해체되다시피 해서 뭉치고 말고 할 실체가 없다. 검찰 내부는 ‘특수 대 기타’의 구도로 바뀐 지 오래인데…. 동료가 죽었으니 격앙돼서 한 마디씩 하는 걸 갖고 (언론이) 침소봉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변 검사의 죽음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검사들이 적폐청산 수사의 ‘출구전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서초동에선 하루 밤이 지나면 새로운 ‘적폐’가 수사목록에 등재된다. 와 있는 사건들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의혹이 넘어오고 있다. 적폐청산 수사에만 서울중앙지검 전체 검사의 40% 가까이가 투입돼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적폐 청산의 가장 큰 목표는,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러니 제도 개선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처벌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쪽으로는 거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전부 사건화해서 검찰로 보내고 있다. 국정원의 경우에도 다시는 정치사찰, 정치관여 못하게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입법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면서 자꾸 새로운 처벌 사안만 이쪽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6일 엔엘엘(NLL·서해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건 등이 왔고, 교육부에, 어디에, 이젠 금융감독원에서도 보낸다고 하는데, 1부터 100까지 있는대로 탈탈 털어서 낱낱이 처벌하는 것이 적폐청산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검찰 핵심 관계자)

이런 인식이 검찰 내부에 차츰 확산되면서, 최근엔 수뇌부도 여권 핵심에 ‘처벌을 전제로 하는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최소화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8일 기자와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국정원 수사와 나머지 적폐청산 수사는 좀 구분해서 보는 게 좋겠다. 변 검사 사건이 있고 나서 ‘충견’이니 ‘하명수사’니 하는 험악한 얘기들이 (검찰 내부에서) 돈다는 보도를 봤는데, 지금 수사하는 사람들이 충견이면 그 전 정권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법원 영장 들고 나간 수사팀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 검사들을 우리 식구라고 봐준다면, 나머지 수사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과거 두 정권에 걸친 전비를 전부 검찰에 수사하라고 보내는 것은 과해 보인다. 당장 ‘하명수사’라는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지 않은가. 명분 있는 수사라도 장기화되면 검찰에도 정권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적폐청산 수사는) 연말까지 마무리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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