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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30 11:20 수정 : 2018.07.02 10:0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감시 역할을 잘 해달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당부했다. 생중계 화면이 걸려 있는 벽면 위에 고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 액자가 걸려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희철의 법조외전(29) 22개월째 ‘개점 휴업’ 특별감찰관

문재인 대통령, “친인척 감시는 조국 민정수석이”
1년 전 후보 추천 요청했던 특감 언급조차 안해
‘공수처법’ 국회 통과 연계시켜 ‘협상카드’로 인식

역대 정부 민정수석 있었지만 친인척 비리로 휘청
청와대 자체 감찰반은 조사범위·인원 한계 뚜렷
“감시자 하나보다 둘이, 내부보다 외부가 효과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감시 역할을 잘 해달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당부했다. 생중계 화면이 걸려 있는 벽면 위에 고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 액자가 걸려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좀 뚱딴지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예 남극으로 보내버리라고 꼭 좀 전하소.”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서는 ‘남극 타령’이라니, 정말 뚱딴지같았다. 새 정부와 <한겨레>가 각별한 사이여서 부탁한다는 말도 우스웠다. 하지만 대통령의 친·인척이 ‘사고’를 칠 우려가 있으니 멀리멀리, 가능하면 사람들이 집적거리기 어려운 곳으로 일찌감치 보내 놓으라는 경고만은 사뭇 진지하게 들렸다. 검사라는 신분, 유독 대통령 친·인척 수사에 여러 차례 투입됐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대통령의 아들이 아파트 베란다 장독에 몰래 숨겨 놓은 뇌물 뭉치까지 찾아낸 사람이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갓 출범한 2003년 3~4월께 일이다.

몇 마디가 더 오갔다.

“이번 대통령은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라 보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게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죠. 권력 주변에는 항상 부나방이랄까, X파리랄까, 그런 사람들이 꼬이게 마련입니다. 가뜩이나 바쁜 대통령이 부인이나 자식들 일까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내가 수사를 해보니까, 처음부터 돈 싸 들고 와서 청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다 나라 걱정, 대통령 걱정하면서 접근하죠. 우리 사회에 이리저리 걸리는 연줄이 좀 많아요? 그래서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하다 보면 결국은 사달이 나게 돼 있어요.”

15년 전 기억을 떠올린 건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 때문이다. 여당에 압승을 안겨준 6·13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난 18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다. 그는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요소 및 대응방안’이라는 조국 민정수석의 보고를 듣고 나서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 악역을 맡아 달라.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도 열심히 감시해 달라”고 말했다.

요컨대 대통령의 친인척이 부패 의혹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국정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관리와 감시를 잘해달라는 당부다.

진단은 100점인데, 처방은 50점짜리다. 원래 그 ‘악역’은, 법률에 따라 특별감찰관(특감)이 수행하게 돼 있다. 여야 합의로 2014년에 만든 ‘특별감찰관법’은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의 비위행위에 대한 감찰”을 특감의 임무로 규정해 놓았다. 독립적인 특감이 이 직무를 주요하게 수행하고, 대통령의 비서인 민정수석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문 대통령은 조 수석에게 당부만 할 게 아니라 여태 공석인 특감 후보자 추천을 다시금 국회에 요청했어야 맞다.

문 대통령도 1년 전에는 그렇게 했다. 그는 지난해 당선 직후인 5월24일 국회에 특감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이석수 초대 특감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미르·케이(K) 스포츠 재단을 감찰 또는 내사하다 2016년 9월 사실상 해임된 뒤 그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당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이 법률상 기구로 이를 적정하게 운영할 의무가 있고, 대통령 친인척 비위 감찰이라는 기능에 독자성이 있으므로 공석인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진행하고, 그 기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법에 따라 정해진 특별감찰관의 대통령 및 친족, 핵심 참모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 수용함으로써 본인을 포함한 청와대의 투명성을 상시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이랬던 문 대통령이 생각을 바꾼 것은 왜일까.

의문은 쉽게 풀린다. 특감 정상화에 대해 누구보다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던 그가 친인척 감시의 주체로 새삼스럽게 조국 민정수석을 지목한 배경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공수처(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때문이다.

지난 과정을 보면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특감 정상화를 요청하자 여당인 민주당은 “6월에 가동할 수 있도록 포청천 같은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야당과 후보 추천 방식을 놓고 ‘밀당’이 이어지다가 청와대가 공수처 입법 문제를 제기한 뒤론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말께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문제 발언이 나왔다. “현재는 공수처법 처리에 집중할 시기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특감은 흡수될 것이다. 특감의 제도적 한계는 이미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확인됐다. 공수처법은 대선 1호 공약이자 여당인 민주당의 당론이다.”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니, 통과될 때까지 특감을 무용지물로 방치해두겠다는 말이다. 그 고위 관계자가 대통령의 허락 없이 ‘특감 무용론’을 입에 올렸을 가능성은 ‘제로’다. 그 이후로 특감 사무실은 22개월째 임대료만 꼬박꼬박 내면서 ‘개점 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특감은 애초 민주당의 작품이었다. 특감을 대통령 선거 공약에 넣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지만, 2013년 4월 특감법을 최초 발의한 것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에서 이른바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던 박범계·전해철 의원 등이었다. 그들은 “대통령 측근 등의 권력형 비리 근절”을 법안 제안 이유로 밝혔다. 이어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진 뒤인 2015년 4월에는 “감찰 대상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며 현행 특감법의 개정안까지 냈었다. 당시 당 대표가 문 대통령이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정권 교체로 ‘공수 교대’가 이뤄지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특별감찰관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주장해 자신들이 적폐라고 한 박근혜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하고, 깨끗하며, 정직한 정부라고 주장한다면, 그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특별감찰관 임명을 위해 국회 협조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세상에 선한 권력, 무오류 권력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의 협조를 얻어 특별감찰관을 즉각 임명하기 바란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2018년 3월15일)

김영삼 정부 이래 역대 어느 대통령도 친인척 또는 측근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씨, 박근혜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씨. <한겨레> 자료사진.

이전 특감 관계자의 말을 들어봤다.

“문 대통령의 18일 발언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권자의 주변에는 자리와 이권을 노리는 ‘수요’가 항상 있는 법이다. 그런 리스크를 감안하면 특감을 임명해서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게 정권에 좋다. 특감이 누구든 일단 임명이 되면 ‘밥값’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집권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런 걸 하라고 여야 합의로 만든 기구가 특감이다. 공수처 입법이 이뤄지면 특감 흡수 문제는 그때 가서 따지면 된다. 그런데 멀쩡히 법에 있는 기구를 여야 간 ‘입법 거래’의 대상으로,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고 온당하지도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대통령의 친인척을 ‘감시’하는 ‘워치 독’은 민정수석실 하나만 정상 가동된다. 정확히는 ‘대통령비서실 직제’령에 있는 ‘특별감찰반’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특별감찰반은 일에 치이고 있다. 인원은 적은 데 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대통령의 친인척 말고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와 공공기관·단체의 장 및 임원이 모두 감찰 대상이다. 그런데 검찰·경찰·감사원 등에서 파견받을 수 있는 전문 공무원의 숫자가 15명으로 제한돼 있다.

여기에 “열심히 감시”해야 할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숫자가 많아지면 설상가상이 된다. 문 대통령의 특수관계인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15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감찰반원 한 명당 감찰 대상이 몇이나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감찰의 한계도 뚜렷하다. 대통령령에는 “특별감찰반의 감찰업무는 법령에 위반되거나 강제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한다고 돼 있다. 사실상 동향 파악 수준을 넘어선 조사가 불가능하다.

대체로 집권자는 친인척 문제와 관련한 보고를 불편해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의 얘기다.

“대통령께 친인척 문제를 보고하면 언짢아하시는 기색이 역력했다. 인지상정 아니냐. 듣기 좋은 얘기일 리 없으니까. 사안에 따라 달랐지만, 그 보고를 할 때면 늘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과거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는 정권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라 그야말로 ‘안면 몰수’하고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통령 친인척한테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하는 게 직무라고는 해도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감시를 해도 ‘구멍’은 뚫린다. 1993년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친인척이 수사를 받지 않은 대통령이 하나도 없다. 비혼이라 예외가 될 것으로 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최순실 씨 모녀의 범죄에 연루돼 탄핵과 구속에 이르렀다.

“과거 정권에서도 민정수석실은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는 민정수석실에 ‘사직동팀’ 같은 막강한 별동대까지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뚫렸다. 문 대통령도 민정수석 시절 노 대통령 형님의 비리를 어쩌지 못했다. 지금 드러난 것을 보면 MB(이명박 대통령) 때 권재진 수석도 ‘빈 총 들고 서 있는 보초’나 다름없었다. 우병우 전 수석 역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비서의 한계다. ‘위징’(충직한 간언으로 당 태종의 치세를 열었던 신하)은 <정관정요>에나 나온다. 그나마 이석수 특감은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재단을 내사라도 했지 않나. 우 전 수석을 감찰한 것도 특감이었다. (워치 독은) 하나보다 둘이 낫다.”(검사장 출신 변호사)

“조국 수석은 평생 공부만 해온 형법학자다. 청탁과 돈질이 난무하는 ‘사바세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조 수석이 알선수재나 뇌물죄의 법리에는 밝을지 몰라도, 대통령 친인척들이 어떻게 오염되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공부로 아는 것과 경험해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정권 초기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하면서 여러 번 실패 사례가 나온 것도 조 수석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대통령이 특감 없이 가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선택한 ‘셀프 감시’가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한 검사)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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