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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마치 무슨 법칙처럼 임기 후반기가 되면 권력형 비리, 친인척(측근) 비리를 겪었다.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씨, 박근혜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씨.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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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75)
역대 정권 뒤흔든 대통령 주변 대형 비리
모두 ‘임기 반환점’ 지나 예외없이 반복돼
도덕성·신뢰 흔들리며 ‘레임덕’ 가속화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9일 기점 ‘하산길’
검찰의 조국 수사 확대조짐 속 시험대에
특별감찰관 공백 2년반…“워치 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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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마치 무슨 법칙처럼 임기 후반기가 되면 권력형 비리, 친인척(측근) 비리를 겪었다.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씨, 박근혜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씨.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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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은 문재인 정부에 좀 특별한 날이다. 2년 6개월 전 대통령 선거에서 41.08%의 득표율로 집권한 문 대통령은 이날을 기점으로 남은 임기가 지나온 임기보다 짧아진다. 흔히 말하는 ‘임기 반환점’,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산행으로 치면 등산이 끝나고 하산 길에 접어드는 셈이다.
반환점을 앞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한국갤럽 조사 기준)는 ‘조국 사태’를 겪으며 한때 대선 득표율보다 낮은 39%(10월18일 발표)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지만, 아직은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다. 이런 추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법조계가 주목하는 ‘임기 반환점’의 의미는 문재인 정부 역시 매우 위험한 구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이래 어떤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한 ‘징크스’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 권력형 비리 또는 친인척 비리를 말하는 것으로, 수사 주체가 모두 검찰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모두 다섯 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25년 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집권 후반기에 권력형 비리나 친인척 비리가 터졌다. 보통 언론의 의혹 제기에서 출발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거나 끌려 들어가고, 그 결과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취임하면서 부패 척결을 앞세우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지만, 이런 징크스를 피해간 대통령도 없었다.”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변호사)
고
김영삼 대통령은 ‘반부패’를 향한 결기가 넘쳤다. 1993년 2월 취임하며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부패 추방을 내세웠다. “개혁은 먼저 세 가지 당면과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는 부정부패의 척결입니다. (…)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코 성역은 없을 것입니다.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제 곧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데 임기 반환점을 돈 뒤 그 ‘위’에서 탈이 났다. 집권 4년 차를 맞은 1996년 권력을 팔아 거액을 챙긴 ‘장학로 비리 사건’이 터지며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장씨가 떡값과 선처 등 명목으로 10여개 기업들에서 20억여 원을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면서다. 남의 세력을 빌려 위세를 과시한다는 뜻의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사자성어가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듬해 둘째 아들 김현철씨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심재륜)에 구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의 임기 후반이면 어김없이 반복돼온 ‘징크스’의 시작이었다. 현철씨는 아버지의 집권 초기부터 ‘소통령’, ‘비선 실세’ 등으로 불리며 공식 직함이 없음에도 국정 전반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1997년 1월 부도 난 한보철강 사건에서 ‘몸통’으로 지목돼 그해 5월 대검 중수부에 구속됐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자의 아들’을 겨눈 첫 사례로, 당시 심 중수부장은 ‘국민 중수부장’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미증유의 외환위기 직후, 1998년 2월에 집권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부패 척결을 누누이 강조했다. “부정부패가 있는 곳엔 민주주의도 경제발전도 없다. 정부는 확고한 결심을 갖고 부정부패 척결 작업을 하고 있으며 대통령도 모범을 보일 것”(1998년 9월18일), “부패의 척결 없이 국정의 개혁은 없으며 만난을 무릅쓰고 이를 단행할 것”(1999년 8·15 경축사), “이번이 마지막 결전이라는 생각으로 검찰, 경찰, 감사원 등을 총동원해 (공직자) 비리를 척결해 나갈 것”(2000년 11월13일)이라고 거듭거듭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짐과 현실은 차이가 컸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2001년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로 일종의 ‘전조’를 겪은 뒤 2002년 대통령 아들들 비리가 연이어 터졌다. 먼저 5월, 셋째 아들 김홍걸씨가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서울지검 특수2부에 구속됐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각종 사업 이권 청탁 명목으로 37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의 알선수재 등)가 적용됐다. 6월에는 둘째 아들 김홍업씨가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여러 업체에서 각종 청탁 명목의 돈 22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의 알선수재)가 대검 중수부 수사에서 드러나면서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 아태평화재단 만찬 행사에서 “대통령 아들들은 수신도 해야 한다”며 비리 연루 가능성을 경계했지만, 역시 가장 어두운 곳은 ‘등잔 밑’이었다. 첫째 아들인 고 김홍일 전 의원마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인 2003년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사건에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나중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삼 형제가 모두 금품비리로 처벌받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정부패를 없애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구조적·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겠습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성찰을 요망합니다.” ‘깨끗한 정치’를 내걸고 당선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에 각별히 주목한 취임사를 남겼지만, 현실이 다짐을 배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2004년 대우건설 사장한테서 사장직 연임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대통령의 오랜 집사인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에스케이(SK)에서 10억대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처벌받았다.
임기 5년 차인 2007년 이른바 ‘신정아 사건’이 불거지며 당시 청와대의 핵심 브레인이던 변양균 정책실장이 그해 10월 구속됐다. 이듬해 정권이 바뀐 뒤로 ‘박연차 게이트’가 터졌다. 국세청에 글자 그대로 ‘탈탈 털린’ 박 회장이 조사에 적극 ‘협조’한 결과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금품수수 혐의로 잇따라 구속됐다. 이어진 검찰 수사로 인해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부패 척결을 강조한 점에선 전임자들 못지않았다. “공직자와 고위직, 정치인을 포함해 지도자급의 비리를 없애는 것은 국격을 높이기 위한 기본이다.” (2009년 12월23일 법무부·권익위·법제처 새해 업무보고)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부조리와 부정부패는 시한을 두지 않고 마지막까지 철저히 척결하겠다. 특히 측근 비리는 더욱 철저히 조사해 엄단하겠다.” (2011년 10월10일 국회 시정연설)
그러나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임기 내내 크고 작은 ‘측근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기 반환점인 2010년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각각 금품비리로 구속됐고, 이듬해엔 이른바 ‘함바 비리’가 터져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과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 등 측근들이 줄줄이 처벌을 받았다. 또 저축은행 비리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대통령을 10년 넘게 보좌한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도 검찰의 칼끝을 피해가지 못했다.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도 각각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임기 막판엔 2012년 후반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이 불거지며 특검 수사까지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2011년 9월30일 청와대 확대 비서관회의)는 ‘명언’을 남겼지만, 2018년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49억원대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전형을 보여줬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달리 자신이 직접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점에서 차원이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래 줄곧 이어진 ‘징크스’를 깰지 모른다는 기대를 받았다. 독신이라 ‘사고’를 낼 만한 직계 가족이 없고, 누구보다 부정부패를 혐오한다고 알려지면서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청와대 비서진 등을 독자적으로 감찰할 ‘특별감찰관’ 제도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취임사에서도 ‘깨끗한 정부’를 앞세웠다.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고 신뢰의 자본을 쌓겠습니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인 2016년 10월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의 진면목을 바닥까지 보여줬다.
이쯤에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 혹은 대통령 주변의 부패는 왜 되풀이되는가.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서”라는 게 수사 좀 해봤다는 법조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센 권력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인사, 정책, 예산 같은 국가 운영의 핵심 기능이 대통령과 청와대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고, 재량 범위도 넓고 크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말 한 마디면 안 될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 믿음이 권력형 비리, 친인척 비리의 온상이 된다. 어떻게든 그쪽에 연줄을 대고, 돈 싸 들고 가서 부탁하면 해결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잘못된 믿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게 돼 있다.” (검찰 특수부 출신 변호사)
그럼 왜 대통령의 임기 전반부가 아니라 후반부에 각종 비리 사건이 몰려서 터지는 걸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말처럼 “검찰의 기본 속성이 죽은 권력과는 싸우고 산 권력에는 복종하는 ‘하이에나식'”(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체질이어서 매번 정권의 힘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 칼을 겨누기 때문일까. 검사들도 인사와 승진에 목을 매는 공무원이라 정권 전반부에 더욱 긴장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건은 ‘발생’하는 것이지, 검찰이 ‘창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아들들’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이런 설명을 들려준 적이 있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권력 주변에 수많은 부나방이 꾄다. 이권을 바라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있다. 연줄에 연줄을 찾아 다 착한 얼굴을 하고 접근한다. 수사를 해 보니, 처음부터 돈 봉투 싸 들고 나타나서 청탁하는 ‘하수’는 없더라. 밥 한 끼, 술 한잔이 시작이다. 자꾸 만나다 보면 경계심이 무뎌지게 돼 있다. 어느 순간 ‘나랏일 하시는 데 보태 쓰시라’며 돈 봉투를 들이민다. 청탁은 나중이다. 준 쪽은 일단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가 꺾어지는데도 ‘답’이 없으면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주변에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게 언론이나 검찰 레이더에 걸리면 그때부터 ‘사달’이 나는 것이다. 이 패턴이 계속 반복돼 왔다.”
그래서, 5년마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고 2014년에 도입한 것이 특별감찰관 제도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에서 ‘친문 핵심’ 전해철·박범계 의원이 먼저 입법을 발의했다.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과 대통령 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는 ‘워치 독’(감시견)을 두기로 한 것이다. 상당한 성과도 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혐의를 감찰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나중에 결국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미르·케이(K) 스포츠 재단’ 설립 경위를 처음 내사한 것이 이석수 초대 특감이었다.
하지만 이 특감이 2016년 9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실상 해임을 당한 뒤 그 자리는 지금껏 비어 있다. “청와대의 청렴성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반부패의 출발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엄정하게 반부패 정책을 추진”(문재인 대통령, 2017년 9월26일 반부패정책협의회 발언)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였지만, 공석인 상태로 2년 반을 보냈다. 법조인들이 꼽는 문 정부의 첫 번째 위험 요인이다.
“그 자리는 임기 처음부터 채웠어야 했다. 나중에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가 생기면 합치겠다지만, 거긴 수사하는 곳이고, 감찰은 영역이 다르다. 언제 만들어질지 모르는 공수처를 기대하며 비워 놓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 특감이 ‘관리’하던 대통령 친인척 명단만 150명이 넘었다. 형제가 단출한 박 대통령도 그 정도였다. 문 대통령은 형제가 2남 3녀나 되니까 최소한 박 전 대통령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 사람들 스크린하는 일을 민정수석에게 맡긴다고 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조국 전 장관이 민정수석일 때 특감이 있었다면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사모펀드 투자 같은 것도 훨씬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이전 특별감찰관실 관계자)
결국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는 뇌물 수사의 경계선까지 다다랐다. 검찰은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가 지난해 1월 저렴하게 사들인 2차 전지 업체 더블유에프엠(WFM)의 주식이 당시 민정수석이던 남편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엔 조국 일가 수사에서 일단 뺐던 수사력을 다시 증강 투입해 ‘수사 폭’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사정을 알만한 위치에 있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 전 장관 소환이 늦춰지는 것은 수사가 안 돼서가 아니라 들여다봐야 할 다른 무엇이 추가로 생겨서”라고 말했다.
만약 검찰 수사에서 금품수수 등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조 전 장관의 추가 혐의가 드러난다면 문 대통령은 몹시 난처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해 6·13 지방선거 직후 문 대통령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 악역을 맡아 달라.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도 열심히 감시해 달라”며 공개적으로 ‘워치 독’ 역할을 맡긴 바 있다. 그런데 그 민정수석이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법조계에선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를 중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더 늦기 전에 특감 임명 등 예방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조국 사태를 일종의 백신,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위험구간’이다. 지금이라도 특감을 임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역대 정부와 다르다’는 도덕적 자신감이 오히려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아주 잠깐 특감 임명 논의가 있었지만, 그 뒤론 무슨 영문인지 얘기 자체가 쏙 들어갔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문 정부 후반기에 주목해야 할 두 가지 포인트를 추가로 집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면 망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부실기업을 수사하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불똥’이 정관계로 튈 가능성”과 “집권 초기 검찰의 적극적인 ‘직권남용’ 수사가 집권 후반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다.
문 대통령은 2년 반전 취임사에서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다짐이 험난한 시험 구간에 접어들었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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