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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의 ‘조국 수사’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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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79)
적폐수사 단골 메뉴 ‘직권남용’ 현 정권도 의심
청와대 압수수색 불사…“검찰 사상 초유의 일”
“조국 수사 연장전”, “윤석열식 수사 스타일”
“검경 수사권 조정·공수처법 겨냥 ‘위력 시위’”
다각도 해석 불구 여권은 깜깜이에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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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의 ‘조국 수사’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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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겨눈 검찰의 수사 행보가 실로 거침없다. 대통령의 임기 말도 아닌데, ‘살아 있는 권력’의 심장부가 타깃이 됐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전 금융위원회 정책국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 육군 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 내 면담한 뒤 관련 자료를 분실했다는 정아무개 전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에 대한 무징계 면직 처리 의혹까지 검찰은 확전 일로를 걷고 있다. 4일엔 비록 임의제출 형식이긴 하나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벌였다.
구체적인 표적은 청와대 주요 인사들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다. 적폐수사에 쓰던 주 무기로 적폐수사를 지지·고무했던 쪽을 겨냥한 형국이다. 처음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추가 혐의를 찾는듯했지만, 이젠 조국 한 사람만이 아니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에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까지 수사 선상에 올랐다. 더 위로, 더 넓게 치고 나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와 ‘경찰’의 교집합, 검경 수사권 조정까지도 검찰의 ‘사정권’ 안에 든 것처럼 보인다.
‘죽은 권력’의 청와대는 검찰의 단골 메뉴였지만, 이번엔 갓 임기 반환점을 돈 청와대다. “과거 정권의 검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검사장 출신 변호사) 그러니 “국내 뉴스엔 검찰만 보인다”거나 “검찰이 대놓고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권의 반응도 부글부글 폭발 직전이다. 그러나 법의 이름으로 법원 영장 받아 진행하는 수사를 중지시킬 방법이 없으니 연일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여권 전체와 검찰이 이처럼 극한 대립을 보이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다시, “검찰은 왜?”, “윤석열은 왜?”라는 질문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조국 대전’ 때 빗발쳤던 그 물음이다. 검찰은 왜, 무슨 생각으로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정권의 심장부, 청와대를 조준한 것일까.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이 초유의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윤석열식 수사 스타일: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한다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수사는, 검찰 비공식 용어로 ‘총장 사건’들이다. 조국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10월 윤 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종류 사건은 제 승인과 결심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수사 역시 ‘이런 종류의 사건’에 속한다. 좋게 보면 정치색을 가리지 않는 거고, 나쁘게 보면 좌충우돌 형인 윤 총장의 수사 스타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진술이) 나와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네요.” 한 원로급 변호사는 ‘대학 후배’인 윤석열 검사와 과거 대검 중수부에서 나눴던 대화를 선명히 기억했다. 그 변호사도 잘 아는 전직 고위 공직자가 느닷없이 대검 중수부에 소환되자, 그는 변호인 자격으로 윤 검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 전직 고위 공직자는 당시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으니 진술을 받은 검찰이 당황할 만한데, 윤 검사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 총장의 스타일은 박근혜 정부 때 ‘댓글 사건’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당시는 박 전 대통령의 집권 첫해였다. 댓글 사건은 특히 선거법과 직결돼, 새 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건드릴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웬만큼 눈치 빠르고 출세를 생각하는 검사였다면 대충 끝내고 말았겠지만, 윤의 선택은 달랐다. 그 결과는 알려진 것처럼 보복성 좌천으로 이어졌다.
지금 보이는 ‘윤의 행로’는 취임사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는 특정 세력을 위한 법 집행은 없다고 선언했다.
“
형사 법집행은 (…)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검찰에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은 법 집행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력기관의 정치·선거개입, 불법자금 수수”를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로 규정하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공정한 법질서를 깨뜨린 사람이나 세력은 누구라도-심지어 집권 세력이라도-그냥 봐주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지금 검찰이 벌인 수사 판에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윤 총장은 과거에 “어떤 기관이든 정치 관여·선거 개입하는 것은 막고, 여든 야든 수평적인 운동장에서 치고받게 하자는 게 소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하는 수사를 보면, 서슬 퍼런 박근혜 집권 초기 댓글 수사를 밀어붙이던 윤석열이 보인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것뿐인데, 총장을 시켜줬다고 생각하는 쪽에선 ‘배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윤 총장은 이 정권이 임명장을 줬다고 해서 빚을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자신이 국정농단 특검에 가서 박근혜·최순실을 수사했기 때문에 오늘 이 정권이 있는 거라고, 반대로 생각하지 않을까.” (윤 총장을 잘 아는 검찰 출신 변호사)
그 정도로는 의문이 다 해소되지 않는다. 왜 하필 지금인가. 유재수 감찰중단 의혹도, 김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도 언제 적 사건인데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는가,고 누군가는 묻는다.
조국 수사 연장전: 나올 때까지 판다?
검찰 내부에선 윤 총장이 언제 취임했는지를 보라고 한다. 7월25일 취임 뒤 한 달 남짓 만인 8월27일부터는 조국 수사에 ‘올인’했고, 그 게 큰 틀에서 마무리될 때쯤 묵혀 둔 사건을 손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서울동부지검에 고발돼 있던 유재수 사건이나 울산지검의 김 전 시장 하명수사 의혹은 전임 문무일 총장 때 일이다. 윤이 이 사건을 지휘할 수 있게 된 건 총장 취임 이후다.
그러나 들판 여기저기 던져져 있던 ‘볏단’을 모아 일렬로 세우듯 그 사건들을 일제히 수사하게끔 한 것은 윤 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의 ‘의지’다. 시점도 당연히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시선을 끄는 게 조국 수사다. 조국 수사는 잠잠해진 지 오래다. 지난달 21일 두번째 비공개 조사 이후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은 두 차례 비공개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다. 5일로 보름이 지났지만, 상황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라는 만족할 답안을 손에 쥐지 못했다. 당연히 수사는 종결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달 27일, 마지막 티타임에서 검찰 관계자는 여운을 남겼다.
-조 전 장관 소환은 아직 일정이 없나.
“그렇다. 수사의 결로 봤을 때 (아내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2차장 산하에서도 조 전 장관 수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논의가 없다는 말인가.
“수사팀 사이에도 일종의 방화벽이 있다. 제가 2차장 산하 수사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한다.”
여기서 언급한 ‘2차장 산하’ 사건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이다. 울산 사건을, 그것도 묵은 사건을, 총장 지시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한 것이다. 명분은 수사 대상자 중 서울 거주자가 많아서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을 잘 아는 이들은 이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검찰이 드러내지 않은 목적과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사를 많이 해본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조국 수사의 연장전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청와대가 타깃인 저 사건들을 지금, 뜬금없이 손 대는 이유가 뭘까. 시점으로 보나 파장으로 보나 그냥 건드릴 사안들이 아닌데, 왜 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론은 조국 때문이 아닌가, ‘본체’(일가 의혹 사건)로 깔끔하게 처리(영장 청구)가 안 되니까, 돌파가 안 되니까, 놓을 수는 없고, 그러니 저기까지 간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와 상황이 아주 비슷하다. (조국과) 연관성을 파다가 안 나오면 그만 털어야 하는 데, 검찰의 관성과 오기 때문에 못 놓는 거지. 그거 외에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그러고 보면, 하명수사 의혹과 유재수 감찰중단 의혹이 겹치는 교집합이 있다. 민정수석실과 조국이다. 이 두 사건을 파고 들면 어느 쪽에서든, 혹은 둘 다에서 조국이 반드시 나온다고 기대하고 있을 수 있다.
윤석열 사단의 생존 전략: 수사로 인사를 이긴다?
이번 수사의 원인으로는 윤 총장과 그 주변에 넓게 포진한 ‘윤석열 사단’의 실존적 위기감도 거론된다. 특히 윤 총장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의 캐릭터를 잘 알고, 검사들의 생리와 문법을 두루 꿰고 있는 ‘검찰 전관’들의 분석이 그렇다.
조국 수사는 여권과 그 핵심 지지층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다. 검찰도 내부 검토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예측은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타난 현상은 그 이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은 ‘사면초가’를 경험했다.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추켜 세웠던 문 대통령은 “조국-윤석열의 환상 조합은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며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정권 눈 밖에 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어떻게 낙마하는지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세대다.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임 뒤에 나온 일련의 ‘개혁 방안’을 검찰 장악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국 수사를 주도했던 입장에선 자신들을 옭아매려는 ‘여권의 반격’으로 받아들일 만 했다. 특수부→반부패수사부 개칭, 41개 인지 수사부서 축소, 수사 사전보고 명문화·법무부 직접 감찰 확대 추진 등은 특수 출신으로 짜인 ‘윤석열 사단’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제도를 바꿔서 우리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며 “다음 응징수단은 인사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매년 2월은 검찰 정기 인사철이다. 새 법무부 장관이 부임하면 시기는 더 당겨질 수도 있다. 마침 검사장급 이상 자리가 6개나 비어 있어 인사 판이 커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윤석열 사단을 흩어놓으면 윤 총장의 힘도 자연스럽게 빠진다.
“여권에서는 윤 총장 주변에서 이런 사건을 만들어내는 참모로 대검 간부 몇 사람을 지목하고 있다. 조국 수사까지도 그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의심한다. 그 간부들은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보직에 있는 후배들과 근무연 등으로 깊숙이 연결돼 있다. 일부 부부장급까지도 포함된다. 위에는 윤석열 사단, 그 아래로는 또 다른 누군가의 하위 여단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의 검찰을 움직여가는 실세들이다. 그런데 조국 수사로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여권이 그들을 가만 놔둘까. 그들 입장에서 보면 다음 인사는 어차피 날아올 칼이다. 그렇다면 앉아서 죽느냐, 싸우다 당하느냐, 그 선택만 남은 셈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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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 4일 청와대 연풍문 앞에서 취재진이 검찰 수사팀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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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일색: ‘실패한 인사’가 이번 사태 불렀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번 검찰 인사의 문제점이 다시 회자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윤 총장 취임 이후 검찰 인사에서는 ‘윤석열 사단’이 주요 보직을 휩쓸었다. 검사로 임관한 이래 인지 수사로 잔뼈가 굵은 이른바 ‘특수통’들이 요직을 싹쓸이했다. 특수(반부패) 영역은 물론 기획과 공안의 주요 자리까지 그들 몫이 됐고,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다루는 법무부 검찰국의 주요 보직 일부까지 그들에게 돌아갔다. 총장, 검찰국장 등을 지낸 인사들이 한결같이 “난생처음 보는 인사”라고 했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윤석열이니까”로 그냥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걸려야 할 사람들이 ‘윤석열 사단’으로 명찰만 바꿔 단 채 승진과 영전의 대열에 합류했다. 개중엔 ‘우병우 사단’의 일원도 있고, 문 정부가 옛 정권의 적폐로 보는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도 포함됐다. 그들 중 일부는 주요 수사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가 있다. 윤 총장의 추천과 조국의 안이한 ‘필터링’ 결과다. “그런 사람들이 이 정부를 어떻게 보고, 어떤 의견을 낼지는 뻔하지 않은가.”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
‘특수 일색’ 윤석열 사단에는 다른 의견을 낼 ‘레드팀’ 혹은 ‘악마의 변호인’이 부재하다. 가령 지금 시점에 유재수 의혹과 하명수사 의혹을 동시에 수사하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검찰 지휘부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검에서 총장 참모 역할을 하는 검사장(부장) 중에 특수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나. 이 정부는 공안 출신 무조건 배제 원칙을 가지고 심지어 대검 공안부장에도 특수 출신을 앉혔는데, 인사를 저런 식으로 해놓으면 ‘이견’이라는 게 나올 수 없다. 어떤 걸 논의해도 그냥 일색인 거지.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특수에서 늘 하던 대로, 관습대로 가는 거다. 윤석열 사단으로 도배를 한 지난번 인사가 큰 잘못을 범한 거다. 특정 인맥이 독식하는 그런 인사는 검찰 역사에 없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ㄴ)
후배들 얘기라면 더 귀담아듣고 감싸 안는 윤 총장 스타일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배들은 곧잘 들이받지만, 후배들 의견은 어떻게든 살려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석열이는 후배들이 뭘 만들어 와서는 ‘이거 꼭해야 합니다’ 하면 거절을 못 해. 지금 검찰 간부들이 일부 고검장 빼놓고는 전부 후배들 아닌가. 특히 대검이 어떻게 돌아갈지 눈에 선하다.” (윤 총장의 선배인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검경 수사권 조정: 내 임기 동안엔 절대 안 돼
지금 진행 중인 수사를 가만 보면, ‘경찰’이란 키워드가 도드라진다. 특히 전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에서다. 우선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현 대전지방경찰청장)은 경찰대 출신으로 대표적인 ‘경찰 독립’론(?)자다. 그가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하명수사를 적극 추진했다고 검찰은 의심한다.
황 청장이 적극적인 수사를 위해 새로 임명했다는 수사 책임자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대척점에 있는 고발인(건설업자)에게 수사 기밀을 대거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업자에게 보여줬다는 문서엔 검사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 결정서, 녹취록, 수사착수 보고서 등이 들어 있었다. 상식 밖이다. 그 수사팀장의 공소장엔 그 고발인과 2017년 4월부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535차례나 통화를 한 사실도 드러나 있다.
경찰은 김 전 시장 수사의 앞뒤로 청와대에 9차례 보고했다고 밝혔다. 사전보고도 포함됐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근 국회에서 “경찰 압수수색 20분 전에 한 차례 보고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횟수보다 중요한 건 보고 자체다. 경찰의 한 고위 간부는 <한겨레>에 “청와대 보고는 통상적인 업무”라며 “민정수석실뿐 아니라 국정상황실에도 보고한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다르다. 일반 행정 업무가 아니라 수사 상황을 ‘외부’에 내보내는 건, 그 대상이 청와대라 하더라도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때맞춰 경남에 있는 사천경찰서도 압수수색했다. 군납 업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전 경찰서장의 혐의를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앞서 구속한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 사건에서 파생된 것으로, 경찰의 ‘치부’를 들춰낸 셈이다. 검찰은 앞서 경찰이 무혐의로 송치한 ‘버닝썬 사건’의 윤규근 전 총경(조국 민정수석 당시 그 휘하에서 근무) 역시 금품수수 혐의를 밝혀내 구속했다. 앞으로도 경찰 비리는 더 터져 나올 개연성이 크다.
검찰의 메시지는 간명해 보인다. ‘경찰을 잘 보시라. 정권의 수족이 돼서 하명수사건 뭐건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않냐. 지역의 업자들과 유착돼 있고, 때대로 돈을 받는 경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수사 기밀도 업자에게 서슴없이 넘겨줬다. 경찰 수사는 청와대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이런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준다고? 그래도 괜찮을지, 국민 여러분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지 잘 생각해 보시라.’
과거 검경간 수사권 조정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한 전직 검찰총장은 훗날 사석에서 당시 심경을 말한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목을 걸고 강력 반대를 했는지를. 때마침 문무일 전임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안팎의 압력을 많이 받고 있을 무렵의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이란 것의 핵심은 딱 하나다. 형사소송법에 있는 ‘수사의 주재자는 검사다’, 이걸 없애겠다는 것인데 어느 총장이라도 그것만은 억셉트(수용)를 할 수가 없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로 죽 있었던 것인데, 그걸 내 임기 동안에 내놓으라고 하면 ‘나는 못한다.’ 왜 하필 내가 이완용이 되어야 하나. ‘거기 도장 찍고는, 그 날로 나는 없다,’ 그런 생각은 어느 총장이라도 같을 수밖에 없다.”
수사 능력·의지 과시: 공수처 없어도 되잖아?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법 통과를 촉구했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큽니다.”
공수처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은 ‘그게 다짐처럼 잘 되겠어?’에 가깝다. 검찰 바깥에 있는 일종의 감찰기구로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규모나 구성으로 봤을 때 별 구실을 못하리라고 예상한다. “반대하지 않는다”는 검찰의 공식 입장에는 그런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내심은 법안 통과가 안 됐으면 하는 것이다. 공수처장이 검찰에 특정 사건의 이송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이첩’ 조항을 검찰은 신경에 거슬려 한다. 검찰 수사를 방해하거나 막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와 연관 지어 검찰이 일종의 위력 과시 또는 시위(Demostration)성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문 정부는 계속해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패트에 올린 명분도 그거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하고 있는 수사 대상을 보면, ‘권력형 비리’에 가깝다. 꼭 돈을 먹어야만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권한을 남용한 것도 충분히 해당하니까. 조국 사건도 펀드 투자 과정 등을 보면 일부 그런 성격이 깔려 있고. 검찰은 일련의 수사를 통해서 ‘공수처 없어도 검찰은 신·구 권력 가리지 않고 성역없이 수사하지 않느냐. 공수처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검찰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ㄷ)
검찰의 최근 행보를 보면 누군가가 잘 짜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인다. 검찰은 청와대를 겨냥한 본격 수사에 앞서 지난달 11일 세월호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누가 따로 지시하지도 않았고, 법에 규정된 것도 아니었다. 세월호 관련 특별법(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검찰은 사회적 참사 조사위원회가 보낸 “고발 사건의 수사”를 맡도록 돼 있다(제28조 3항). 그런데 검찰은 수동적인 고발 사건 수사를 넘어 전면 재수사라는 ‘선수’를 두었다.
효과는 컸다. 그때까지 다소 남아 있던 조국 수사에 대한 분노 여론이 잦아들었다. ‘윤석열 체포’까지 외치던 진보 진영 일부도 침묵 또는 관망 모드로 돌아섰다. 일부에선 “역시 윤석열”이라며 검찰의 결단을 반겼다. 검찰 나름대로 여론의 흐름을 읽고, 또는 예상해가며 수사의 시기와 방법을 정밀하게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속수무책 청와대: 검찰 움직임 몰라 ‘깜깜절벽’
여권이 느끼는 당혹감과 배신감은 그들의 말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검찰이 표적·선택 수사를 일삼고 있다. (…) 검찰의 정치수사 행태를 막기 위해 검찰개혁 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최근 발언이다. 그 이 대표가 6개월 전에는 “윤석열 총장 후보자가 자신이 가진 검찰의 칼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여권 전체가 분노로 들끓어도, 검찰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다음 인사를 벼르거나, 법무부에 ‘특별 감찰’을 촉구하거나, “한국당과 반개혁 공조”라고 비난하거나, “특검으로 낱낱이 벗겨내겠다”는 ‘말 폭탄’을 날리는 정도다. 검찰의 속내에 대해선 깜깜하다. ‘채널’ 부재다. 검찰은 법무부에 수사 상황을 보고하지 않는다. 법무부가 모르니 청와대도 모른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현재 무엇을 쥐고 있고, 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판사 출신 추미애 의원(사법연수원 14기)이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지금 국회 상황을 봐선 연내 인사청문회 개최를 장담하기 어렵다. 검찰이 독주하는 수사 정국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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