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1 16:41
수정 : 2005.02.11 16:41
근대풍속사 시리즈 6권 나와
근대가 시작되던 때, 흔히 ‘일제강점기’라고 불리는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는 어떤 시공간이었을까? 당시 조선땅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일단 비참하고 서러운 모습들일 것이다. 울분에 찬 독립투사와 수탈당한 농민들의 눈물과 같은.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꼭 그런 모습만 지녔던 것은 아니다. “그 시기에도 사람들은 서로 만나 사랑했고 함께 차 마시며 연애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또 어떤 이는 갑자기 불어 닥친 황금열에 편승하여 벼락부자가 될 꿈에 달떳으며, 또 어떤 이는 진고개의 화려한 야경 앞에서 부나비처럼 근대적인 소비를 향유하기도 했다.” 국문학자 강심호씨가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에서 지적했듯 이러한 모습들도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이 살던 모습 가운데 하나였음은 당연하다. 다만 ‘민족주의’나 ‘정치사’같은 거시적인 역사인식이 이같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처럼 당연했지만 그동안 관심밖에 있었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사가 요즘 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문학자 강심호씨의 책을 비롯해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로 한꺼번에 묶여나온 6권의 근대풍속사 책들은 바로 이런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여섯 권 모두 식민지 시대에 살면서 밀려들어오는 서구 문물들, 새롭게 탄생한 대중문화와 매체들 속에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급격한 변화와 상호작용했는지 당시 신문과 문학작품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큼직한 주제만을 좇았던 역사학 풍토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잘디 잔 서민들의 생활상, 그러나 동시에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란 점에서 진정 ‘주류’이기도 한 그 모습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 우리가 지닌 감수성과 문화의 원형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승원씨의 <소리가 만들어낸 근대의 풍경>은 근대 기계 장치들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소리들이 사회와 대중들을 어떻게 변모시켰나를 살피고 있고, 김주리씨의 <모던 걸, 여우목도리를 버려라>는 근대 패션과 식민지 조선사람들의 만남이 빚어낸 변화를 들여다본다. 소래섭씨의 <에로 그로 넌센스>는 1930년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에로틱한 것, 그로테스크한 것, 그리고 넌센스 열풍의 근저에 깔린 조선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어간다. 백지혜씨의 <스위트 홈의 기원>은 행복한 가정을 위한 여성잡지의 시작을, 김미지씨의 <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는 전근대적 전통과 근대적 감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새롭고 독특한 집단 ‘여학생’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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