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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6:47 수정 : 2005.02.11 16:47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

/모리스 클라인

확실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문예부흥, 나아가 근대 유럽 문화의 젖줄이다. 그 물줄기는 오늘도 서구 문화의 밑바탕에 흐른다. 번역서 리뷰 형태로 해외 사상가의 자취를 좇는 작업을 하면서 그런 점을 실감한다. 유럽과 미주 출신 사상가는 기독교와 강한 친연성을 보인다. 정립이든 반정립이든 그들의 생각은 예외 없이 기독교와 맞닿아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다시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차에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경문사 펴냄)를 만났다. 웬일인지 책등에 새겨진 원제목(Mathematics in Western Culture)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수학을 헬레니즘으로 치환해 충격을 상쇄하려는 의도는 이내 지레짐작이자 얄팍한 생각임이 드러났다. 수학자들에게도 기독교의 영향력은 만만찮았던 것이다. 클라인이 수학적 성취가 종교와 사회에 대한 견해를 바꿔놨다면서도 여전히 하느님을 최초의 원인으로 보는 20세기 전반의 미국 수학자 아서 S. 에딩턴과 제임스 H. 진스를 책의 말미에 언급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래도 이 책은 진정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 아니,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수학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씻어 주는 한편, 새로운 시야까지 터 줬으니 말이다. 수학을 억지로 배우던 시절, 우리 대부분의 수학 실력은 보잘 것 없었다. 당연히 수학은 첫손 꼽히는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수학의 부담감에서 멀리 벗어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2000년 봄, 붐을 이룬 ‘수학 교양서’를 훑어보고는 수학책이 맘에 들기 시작하더니만, 마침내 이 책을 통해 수학 자체가 좋아진 것이다.

〈수학, 문명을 지배하다〉는 수학을 매개로 짚어본 서양 철학사고, 과학사며, 문화사다. 또한 수학사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제한된 지면에 간추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읽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독후감을 밝히고 싶다. 책은 수학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종내는 사물의 이치마저 깨우쳐 주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직각삼각형에서 이웃하는 변의 길이의 비율 중 하나인 사인(sine)의 정의와 원리, 그것의 응용을 이제야 분명히 이해한다. 그러니 더 말해 뭐하랴 마는 초한수 개념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무한집합에서는 양의 정수와 짝수의 개수가 같다니. 수학의 합리적 ‘마술’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연역적 추론과 양적인 탐구가 수학의 발달을 낳았다는 분석은 그래도 수긍이 간다. 고도의 추상성이 곧장 유용성으로 직결되는 식의 수학적 방법론의 역설 또한 비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4차원의 세계를 도출하는 차원에 이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리만 기하학을 다룬 대목에선 개안,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슬며시 거론된 마르크스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아쉽기는 하지만 이는 책이 출간된 반세기 전 미국의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육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초등학교 일제고사 부활을 선언했다. 그런데 한날 한시에 시험을 치른 우리는 어찌 그리 수학실력이 형편없었을까! 교육청 관계자는 일종의 ‘경기부양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학력 증진 방안을 내놓기에 앞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또 지혜로운 학부모라면 자녀에게 ‘고교 수학의 바이블’보다는 수학의 참맛을 일깨우는 책을 우선 접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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