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허애덕 수녀. 애화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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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화신’ 독일인 허애덕 수녀
평생 장애우 곁에서 헌신
장례날 하늘선 하얀 꽃가루 올들어 가톨릭과 불교계 두 별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간 향기가 수도인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오고 있다. ◇ 허애덕 수녀(독일명 카리타스)=지난달 24일 92살로 별세한 그에 대해 장례미사를 주례한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의 화신으로 사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김영자 원장수녀는 “마지막까지 ‘나의 예수님, 자비를!’ 수없이 되뇌이다 ‘수호천사님’을 부르며 돌아가셨다”며 “이 분은 늘 유머와 사랑이 넘쳐 잠깐 만난 사람조차도 이 분을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일인인 그는 뮌헨대학 재학 중이던 1937년 수녀회에 입회에 이듬해 선교를 위해 한국 원산으로 와 청각 장애우를 만난 뒤 평생 장애우를 위해 이 땅에서 헌신했다. 49년부터 53년까지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다 강제추방됐다가 55년 다시 한국으로 온 그는 서울 미아동에 병실 5개를 갖춘 병원과 주택이 딸린 ‘침묵의 마을’을 만들었다. 또 76년에는 청각장애인 전문교육 시설 서울 애화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경기도 원곡에 청각 장애인 양로원 ‘성 요셉의 집’을 지었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자 98년부터 대구 사수동 대구분원에서 지내다 그 수녀원이 보이는 언덕에 안장됐다. 장례날 하늘에선 흰 눈이 펄펄 쏟아졌다. 그를 사랑하는 수도자들은 하느님이 날려주는 환영의 꽃가루라며 춤을 추기도 했다. 깊은 산속서 수행전념 초삼선사
불교계에서도 아는 이 드물어
많은 선승들 깨우치고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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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삼선사=지난달 17일 81살로 입적한 그에 대해선 일반인은 물론 불교계에서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판사 스님’으로 유명한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 선사의 제자로서 주목받던 승려였지만 단 한번도 주지는 물론 선원장, 조실과 같은 일체의 직책을 맡지 않은 채 오직 깊은 산에서 수행에만 전념했다. 1980년부터 10년 간 장좌불와(밤에도 눕지않은 채 좌선정진)를 한 뒤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북 봉화 각화사 동암에서 철조망을 치고 외부의 출입을 막은 채 홀로 살았다. 각화사 서암에 머무는 고우 스님(전 각화사 태백선원장)의 강권으로 각화사에 들어온 행자를 상좌(제자)로 받긴 했지만, 그의 시봉도 받지 않았다. 지난해 8월부터 경북 합천 황매산 토굴에서 정진하다 열반했다. 이처럼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경남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금봉암에서 열린 다비식엔 송광사의 방장 보성 스님과 회주 법흥 스님, 주지 영조 스님을 비롯해 대구 관음사 주지 원명 스님, 전국 수좌회 대표 현산 스님(화엄사 선원장), 내소사 선원장 일호 스님, 법주사 선원장 함주 스님, 백련암 선원장 법련 스님, 쌍계사 승가대학장 통광 스님, 칠불사 선원장 일수 스님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승들이 모여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그의 투철한 수행력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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