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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6 17:40 수정 : 2005.02.16 17:40

판검사…교수…예술가도
낮은 곳으로 임한 봉사자

서울 중구 장충동 1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유럽의 중세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장중하게 서 있다. 경동교회다. 1983년에 지어진 이 교회는 건축가 김수근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예배당 내부엔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을 뿐 일체의 치장도 없다. 시멘트벽 그대로다. 예배당은 마치 오페라홀 같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그런 분위기를 더욱 자아낸다. 봄·가을이면 목요일 점심때마다 인근 직장인을 위해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여는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 심혈 기울인 ‘작품’
신자들만의 ‘예술의 전당’ 탈피
이주노동자 위한 진료 5년째
탈북자 대안학교도 운영
세상 향해 성문 활짝 "환영합니다”

예배당만이 문화의 전당은 아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여해문화공간이 있다. 여해는 1945년 해방 직후 김재준 목사를 모시고 이 교회를 설립한 강원용 목사의 호다. 대학로의 어느 연극무대보다 좋은 시설이다. 교인들이 무대와 객석을 채우는 음악과 연극이 종종 선을 보이는 곳이다. 또 교회의 배려로 성남의 탈가정 아이들의 연극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 선교관 2층엔 갤러리가 있어서 교인들의 미술 전시회가 자주 열리고, 지하엔 도서관이 있다. 한마디로 경동교회 교인들은 교회 안에 자기들만의 ‘예술의 전당’을 갖고 있는 셈이다.

1999년 담임으로 초빙된 박종화 목사(60)는 현장 목회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이었다. 한신대에서 10년 동안 교수를 했고, 이 교회에 오기 전 5년 동안 기독교장로회 교단 총무를 지냈다. 교회 건물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학자 목사의 목회 때문인지 이 교회 출석 신자(성인) 900여 명 가운데 전문가들이 특히 많다. 대학교수가 120여 명, 의사만도 60여 명이나 된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의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한 유명한 예술가, 문학가들도 이 교회엔 즐비하다.

만약 교회가 이들만의 공간으로 머물렀다면 경동교회는 ‘잘난 사람들의 사교장소’ 쯤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경동교회는 이런 ‘맨 파워’를 가진 조직만이 할 수 있는 봉사를 해내고 있다. 박 목사가 취임하자마자 2000년 4월부터 시작한 것이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진료다. 매월 1,3주 주일 예배후면 교회는 병원으로 바뀐다. 수술만 하지 않을 뿐 한방까지 포함해 12개과를 갖춘 병원이다. 외국인근로자들를 위한 공간으로 온전히 교회를 내주고, 교인들은 그들을 위한 봉사자가 된다. 평균 34개 나라 근로자 250명이 오고 있다. 판검사도 교수도 이곳에서 조용히 외국인노동자들의 수발을 든다. 박 목사의 부인 김현숙씨도 진료카드를 작성한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홍기선 원장 가족은 진료 뒤 청소를 한다.


이 교회는 지난해 1월부터 ‘탈북자 대안학교’도 운영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 학생들을 위한 초·중·고 졸업 검정고시반이다. 학생 15명을 가르치는 봉사자는 30명이다. 전직교수 및 교사들이 상당수다.

이렇게 봉사할 일이 많은 교회지만 경동교회엔 매년 100여 명씩 신자가 늘어나고 있고, 봉사에 대한 열의도 갈수록 높아간다. 자기일에만 관심을 보이기 쉬운 전문인들도 휴식을 위한 문화공간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헌신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박 목사는 붉은 벽돌 건물을 자기들만의 ‘닫힌 성’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성문을 활짝 연 교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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