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05 20:59 수정 : 2005.01.05 20:59

신자들과 또 이웃들과 함께 마음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열어가는 교회들이 있다. 닫힘보다는 열림, 나뉨보다는 나눔, 증오보다는 사랑을 일깨우고 실천하면서 자신들도 행복해지는 교회 목회자들을 매주 만나본다. 편집자 주

“수십억대 빌라촌 사람이 단칸방 구역예배 와요”

“오후엔 교역자들과 볼링 치며 놀아야하는데, 취재하는데 잡혀 있어야 하나요?”

서울 서초구 서초3동 산정현교회 담임 김관선 목사(50)가 투정아닌 투정을 부린다. 4일 시무예배를 드리고 교회 교역자와 직원 9명을 집으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한 그는 교역자들과 함께 볼링을 치러가야하는데 못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역자들 얼굴이 싱글벙글인것을 보면 점심만으로도 대만족인 모양이다.

김 목사가 산정현 교회에 온 것은 지난 1995년. 1906년 평양에서 창립돼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민족지도자 조만식 장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등 쟁쟁한 인물들의 혼이 서린 이 교회에 40살의 그가 담임으로 ‘간택’됐을 때 기대와 함께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너무나 유서 깊은 전통속에만 매몰된 듯한 교회는 지난 10년 간 활력이 넘치는 교회로 탈바꿈했다.

이 교회는 부자 동네에 있다. 시가 수십억대 고급 빌라 등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고급 빌라 뒤엔 40여 가구의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 있다. 교회에서 3분 거리다. 교회는 빈부의 38선에 서 있다.


지난 10년 간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서로 먼 산 보듯해 나뉘었던 사람들끼리 경제적, 사회적 처지를 떠나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가 부임하자마자 인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 때 육개장을 끓여가 피해자들과 구조대에게 먹이자고 했을 때만해도 교인들이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어색해 했다. 그러나 막상 봉사한 다음엔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었다.

97년 구제금융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결식아동들의 급식비를 내주고,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과 혼자 사는 노인들,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기 시작했다. 교인들의 자발적 호응이 크게 늘었다. 이렇게 국가적 위기는 오히려 산정현 교회가 더욱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정현교회는 순교자기념관을 짓기 위해 필요한 20억원 이상의 기금을 마련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김 목사는 신축 대신 과감히 리모델링을 선택해 비용을 7억원으로 줄이고, 지역사회와 더 빨리 나눌 수 있는 길을 텄다.

명절 때면 가난한 고향 교회 예배에 참여해 도움을 주라는 김 목사의 독려를 받는 교인들은 매년 여름이면 수련회 대신 농촌으로 봉사를 떠난다. 또 농촌 지역의 농산물을 교인들이 사주고, 최근엔 지난 여름 갔던 전북 진안 금양교회 마을 사람들의 된장공장 건립도 지원하기로 했다.

“도움을 주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먼저 행복하지요. 우리 교인들이 이제 그것을 알아요.”

그가 행복한 것은 출석 신자가 300명에서 700명으로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김 목사는 요즘 수십억대의 빌라촌 사람이 단칸 지하방의 구역예배에 참석해 식사를 하고 어울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단다.

“나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나눔뿐이에요.”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