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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5 17:10 수정 : 2005.02.25 17:10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고전은 숲속의 잠자는 공주다. 시간이라는 망각의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지혜의 미녀라는 뜻이다. 사랑의 열기에 빠진 왕자가 나타나 입을 맞추지 않는 이상,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난제를 풀어헤칠 지혜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읽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는 뜻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서병훈 옮김·책세상 펴냄)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일러주는 고전이다. 우리의 상황은 마치 여행이 시작되자 길이 끝난 꼴이다. 절차적 민주화라는 높은 산을 넘어서자 이번에는 사회갈등의 극대화라는 늪에 빠져 버렸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더 굴러가지 못하고 외려 뒤로 밀려가는 듯하다. <자유론>에는 옴짝달싹 못하는 수레를 밀어줄 강한 힘이 내장되어 있다.

<자유론>의 주제는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질과 그 한계”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밀이 힘주어 말하는 결론은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하고 싶은 말을 머리말에서 다한 밀은 제2장에서 토론과 논쟁의 가치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을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원유’가 무진장 묻혀 있는 대륙붕이다. 나는, 정치란 “갈등을 민주적으로 표출하고 정당을 매개로 이를 민주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이며, 그 효과가 사회의 통합을 가져온다”는 최장집의 주장에 동의하는 축에 든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갈등의 제도적 경쟁과 타협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은 토론과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대화와 토론은 오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요구된다. 완고하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행사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고 밀은 말한다. 새로운 성자를 인정하는 시성식에 ‘악마의 변’을 듣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악마의 험담에 혹 약간의 진실이라도 있는지 따져보기 전에는 서둘러 성인의 자리에 올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경쟁이 오류 가능성을 놓고 벌어진다면, 타협은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데서 일어날 터다. 밀은, 대립하는 두 주장이 한쪽은 진리이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나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수파가 횡포를 부리지 못하고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가능성이 열린다.

<자유론>이 우리 시대의 약인 것만은 아니다. 제5장 ‘현실적용’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자유거래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시장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밀의 시대에는 정부 간섭의 최소화가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주주민주주의라 일컫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해지고 있다. 자유의 극단화가 평등의 최소화를 몰고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찌했든, 밀은 여러모로 옳다. 당장,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밀의 주장 가운데 약은 받아들이고 독은 버려야 하니까 말이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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