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4 15:25
수정 : 2005.03.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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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스노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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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스노(1905~1972)는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1980년대의 인물이다. 양심과 열정이 있는 젊은이라면 모두들 혁명을 꿈꾸었던 저 ‘불의 시대’ 한가운데에 스노의 책 한 권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혁명가들의 혁명운동을 장대하게 그린 <중국의 붉은 별>이 그 책이었다. 스노의 이름은 또 한 명의 작가 님 웨일스와 연결돼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 속의 주인공들처럼 중국 땅에서 조선 혁명을 위해 싸웠던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의 지은이 님 웨일스는 스노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이 아니라면, 스노의 일대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에드거 스노의 자서전>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엉켜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만들어내는 20세기의 현장을 주인공이 온몸으로 관통하는 과정을 읽는 일은 그대로 간접체험의 한 강렬한 형식이 된다. 스노는 자신이 가장 애정을 기울였고 또 가장 오래 머물렀던 중국 뿐만 아니라 인도차이나·미얀마·인도·중동,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까지를 쉼없이 뒤지고 다닌 천성의 방랑자였다. 동시에 그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격변의 현장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언론인이었다. 여행자의 감수성과 언론인의 집요함으로 그는 세계사적인 사건들의 진실을 포착해 서방에 알렸다.
한가로운 여생 꿈꾸던 젊은이 우연한 여행길서 인간애 눈떠
피미린낸 흠씬한 20세기 현장 쉼없이 뒤지며 집요하게 기록
그의 평생 직업은 기자였지만, 처음부터 기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는 걸 이 자서전은 알려준다. 스물두 살의 청년 스노는 뉴욕에서 증권 투자로 챙긴 얼마간의 돈을 들고 한 1년쯤 세계를 돌면서 모험을 즐길 마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여행을 끝낸 뒤에는 뉴욕으로 돌아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큰돈을 벌어서 한가롭게 책이나 읽고 글도 쓰면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 계획은 중국 상하이에서 우연과도 같이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틀어졌다. 이어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 인민들의 삶을 목격하면서 그 계획은 영원히 머릿속의 구상으로 남는다. 그들의 비참은 그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휴머니즘을 부추겨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그를 역사의 중심부로 이끌어들였다.
스노가 마오쩌둥과 공산당을 존경심 어린 우호의 눈길로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신이 공산주의를 신봉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산주의를 서방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짓눌린 아시아의 비극을 끝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서방 기자로는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던 ‘홍구’로 들어가 마오쩌둥과 그의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데 성공한다. 그때 만난 마오쩌둥은 무한한 확신을 지닌 정치적 예언자처럼 보였고, 또 실제로 그가 예언한 대로 세계사가 전개됐다고 이 책은 기술한다. 스노는 1949년 혁명이 성공한 뒤 중국 땅에 미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들어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옛날의 친구들을 다시 만났으며,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문을 뒤에서 주선했다. 그는 끝까지 혁명 중국에 대한 사랑을 간직했다. 그러나 닉슨이 방중하기 불과 엿새 전에 “자신이 뿌린 씨앗의 발아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고 옮긴이는 전한다.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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