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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이 무대에 올랐을때 |
어제와 그제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소극장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공연이 펼쳐졌다. 천운영씨의 소설집 <명랑>을 노래와 춤, 모노 드라마 등으로 ‘번역’하는 공연이었다. 소설집 <명랑>이 문예진흥원이 주관하는 ‘올해의 예술상’ 2004년도 문학 부문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마련된 무대였다.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해 공연하는 일이야 드물지 않다지만, <명랑>의 무대화는 통상의 각색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소설집에 있는 단편 넷을 각기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변주’하는 실험은 상당한 모험이 따르는 시도였을 테다. 공연이 지난달 초의 수상작 선정 뒤 한 달 사이에 ‘급조’되었다는 점도 염려스러웠다.
기대 반 의구심 반 지켜본 공연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우선, 네 편의 서로 다른 단편을 각기 다른 장르로 풀어 보였음에도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성을 확보한 것이 돋보였다. 표제작인 단편 <명랑>의 주인공 할머니의 죽음이 그 통일성을 담보해 주었다. 흰 버선발의 움직임만으로 표현된 손인영의 춤, 그리고 작가 천운영씨가 직접 유골함을 들고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앞부분의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서 허공에 걸린 버선 두 짝과 무대 전면에 놓인 흰 국화꽃들과 조응하며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 공연을 한 줄로 꿰어 주었다.
출연진의 분발도 돋보였다. 단편 <늑대가 왔다>를 몇 편의 노래로 바꾸어 부른 배우 송희정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표정 연기를 곁들여서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 주었다. 각각 단편 <그림자 상자>와 <세 번째 유방>을 모놀로그로 소화한 배우 박리디아와 주진모의 연기도 좋았다. 온몸을 던지다시피 한 두 배우의 열연은 일인극임을 잊게 만들 정도로 무대를 꽉 채웠다.
무엇보다 연출의 감각을 높이 사 줄 만했다. 이번 공연의 기획과 총연출은 지난 2002년 ‘문학카페 명동’ 기획을 통해 일찍이 문학과 공연의 결합을 시도한 바 있는 주홍미씨. 주씨는 소설들의 줄거리를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과감한 생략과 압축을 통해 작품을 해체, 재구성해 보여줌으로써 공연을 독자적인 생명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 신청을 거쳐, 작품을 미리 읽은 이들을 관객으로 초청한 방식이 그런 연출을 가능케 했을 게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이어진 공연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종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수 이은미와 해금 주자 강은일의 축하 연주, 그리고 천운영씨의 문단 동료들이 보내는 영상 축하 메시지가 관객들의 긴장을 적절히 해소해 주었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허공에서 객석으로 떨어져 날린 흰 국화꽃잎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공연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소극장 개관 이래 최대 인파였다는 관객들은 뿌듯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나갔다. 싸락눈 몇 낱이 그들의 머리 위로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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