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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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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윤리적으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생활인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으로’ 사유에 사유를 거듭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완전히 단절된 두 세계에 따로 사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그가 교수생활을 했던 영국의 캐임브리지대학과 거기에서 발원한 영미 주류 철학계는 ‘윤리적 비트겐슈타인’을 그의 철학과는 무관한 것으로, 특이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사유와는 무관한 일종의 에피소드로 쳐내버림으로써 ‘논리적 비트겐슈타인’만을 추출해 계승했다. 그리하여 독일어권에서 성장한 이 철학자는 영어권 철학에 어울리는 철학자로 마름질됐다.
윤리적 삶 일화로 치부되며 ‘논리의 대가’로만 재단돼 와
그러나 그의 철학적 사유는 방탕·사치 가득한 고향서 윤리를 구출하기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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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제시하는 ‘다른 방식’이란 비트겐슈타인이 출생하고 성장했던 빈의 정치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의 사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고민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합스부르크 제국)의 심장부 빈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화려한 왈츠와 소란스러운 카페와 방탕과 사치가 독한 향기를 뿜는 세기말의 빈은 제국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몰락의 장소였고, 온갖 정치적 모순과 억압과 갈등이 폭발 직전까지 와 있었다. 부르주아의 삶은 위선과 치장의 외관으로 더러운 하수구를 막은 채 그 위에서 향락의 날밤을 세우는 거대한 기만이었다. 그 시절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포괄되는 20세기적 문화투쟁이 이 기만에 대항해 음악·미술·건축·문학·철학 등등의 분야에서 벌어졌다. 그들의 빈의 이 퇴폐와 거짓의 문화언어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새로운 언어를, 다시 말해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그들의 목표는 타락한 언어로부터 윤리를 구출하는 데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바로 그 빈 시대의 한 특출난 소산이었다. 윤리적 문제는 철학적 언어로는 풀 수 없으며, 풀 수 없는 것을 풀려고 하는 모든 논리적 시도는 ‘헛짓’이므로 폐기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과격한 결론이었다. 화려한 철학의 언어는 빈의 화려한 문화들처럼 겉치레만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고 본 것이다. 개인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고민은 철학적 논리 바깥에, 일종의 침묵 속에 남겨져야 한다. 영·미 분석철학은 이 결론을 빼버린 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만을 취함으로써 그의 진정한 관심사를 망각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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