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8 17:00
수정 : 2005.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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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령 소설집 ‘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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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령(60)씨가 그간 발표했던 소설단편들을 묶은 <정혜>(하늘재 펴냄)를 냈다. 표제작 <정혜>는 최근 개봉한 영화 <여자, 정혜>의 원작이기도 하다. 12편이 모두 집요하리만큼 ‘사랑’만을 글감으로 삼는다. 진부한 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이라는 믿음을 보이는 듯 하다.
‘정혜’는 갇혀있는 여자다. 친척 아저씨한테 성폭행을 당한 게 열 세살 때다. 외려 아버지가 먼저 부담이 되어 정혜를 피했다. 신혼 첫날 밤 잠든 남편을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정혜는 세상을 바라볼 뿐 소통하지는 않는다. 남성에 대한 불신은 물론, “인간의 따뜻한 사랑”조차 믿지 않는 탓이다.
그러던 정혜가 갇힌 세상 밖으로 말을 먼저 건다. 자신이 일하는 우체국을 드나든 김준석을 난데없이 식사 초대한 것은 준석이 매번 지쳐있고 기댈 곳 없음에도 그늘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의 드러냄이나 움직임은 늘 죄의 이미지”로 전해진다는 정혜는 남성을 책망한다기 보다 그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제 것으로 내면화한, 정작 자신 스스로를 불신한 게 아니던가. 그들이 곡절 끝에 함께 걷는 길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가’ 되묻는 길인 듯, 여운 있다.
기억 속의 열정적 사랑으로 회귀하려는 <아직도 사랑하는가>, 공허한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등에서 볼 수 있듯 사랑은 개별적이고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랑의 부재’가 존재감의 부재(<그림자 없는 사람>)로까지 이어지는 게 낯설지 않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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