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3 17:42
수정 : 2005.03.23 17:42
벌써 40년 전 일이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한창 들떠 있을 때 서울 태생의 동기가 중앙극장으로 영화 구경 가자고 친구들을 모으고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중앙극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시절이라 7, 8명의 친구들이 모여 따라갔다. 극장에 도착하니 선동하던 서울 친구가 “입장료는 각자 내야 한다. 자, 입장료 내라.”며 우리들에게 독촉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는 일순 당황했다. ‘자기가 가자고 했으면 자기가 우리 입장료까지 내서 구경시켜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냐? 공짜 구경시켜 줄 듯이 가자 해 놓고, 이제 와서 우리들에게 각자 입장료를 내라니, 이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울컥 치밀면서 그 서울 친구에게서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더니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서울 학생들은 40년 전부터 각자 돈 내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지방 학생들은 이 풍습에 익숙지 않은 것 같다.
출가하여 산사에 살면서 이런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스님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다도(茶道)를 이야기하자면 주로 전라도 출신 스님들이 관심이 많고 전문가도 많은 반면에 경상도 스님들은 다도에 별로인 것 같다. 그것은 전라남도 전역에 차밭이 풍성한 것에 비해 경상도는 하동 쌍계사 주변을 제외하고는 차밭이 없는 것도 그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철스님을 시봉하면서 전라도 기질과 경상도 기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놈아! 사람이 출세를 하려면 경상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처럼 민첩해야 하고,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처럼 우직해야 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느려 터져 가지고 매사가 답답한기라.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 보면 재주가 많거든. 재주가 많아서 날 새거든….” 나도 큰스님에게서 재빠르지 못하고 곰새끼처럼 느려 터졌다고, 꼭 경상도 놈이라고 야단도 많이 맞았다.
나도 세상을 살면서 서울 사람도 만나고 충청도 사람도 만나고 전라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큰스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재미있었다. 내가 아는 한 전라도 스님들은 다재다능한 면이 많아 큰스님 말씀처럼 민첩한 분이 많은 듯 하다. 세상 일 따지고 보면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이지만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큰스님의 말씀을 전해본다.
원택스님/겁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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