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3.23 17:46 수정 : 2005.03.23 17:46

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일까

많은 성현들이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밝혔다. 노자, 장자, 공자, 석가, 예수, 그리고 이 땅의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소태산 박중빈 등도 깨달아 길을 열었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그들이 깨달은 것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물고기가 아무리 눈이 밝아도 물 밖의 사물을 보지 못하고, 사람이 아무리 총명해도 사람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천지를 삼킨 물고기>(모시는사람들 펴냄)에서 지은이 오문환씨의 이 말처럼 깨달음은 감히 생각으로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깨달음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은 미망에 미망을 더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일반인들의 혼돈을 청량한 바람처럼 날려보낸다.

‘마음이 본성을 찾으면 고요하고 영원하고 움직이지 않게 되고, 마음이 조화에 통하게 되면 천변만화하는 세상의 일에 통하게 된다.’

지은이는 마음의 고요함과 움직임을 산과 물에 비유했다.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본성이 산이며, 변화무쌍한 지형에 어김없이 적응하는 마음이 물이라는 것이다.

정치학 박사인 오씨의 직업은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성균관대, 서강대, 경기대에 출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직업도 그의 구도역정의 테두리 안에 있을 뿐이다. 그는 1986년 인도 캘커타의 요가명상단체인 아난다마르가에 입문해 인도, 중국, 티베트 등으로 구도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나, 1999년 국내에 돌아와, 천도교에서 ‘도인’으로 존경받다 지난해 환원한 월산 김승복 선생을 만나 천도교 수도를 했다. 그 이후 매년 ‘49일 수도’를 해왔다.

조선 봉건 왕조와 반상의 차별, 외세의 침탈로 신음하던 근세에 동학민중항쟁과 3·1운동은 천도교 수도의 힘이 그 바탕이 됐다.

다시 이 글은 천도를 밝혀놓고 있다. ‘천기누설’한 그의 글이 깨달음과 본성품을 제시한 수천년 역사의 종교들을 오히려 희롱하고 있다.

조연현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